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조두순 어디로, 한동훈이 답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주민 다 죽이는 쓰레기 소각장 절대 반대’ ‘독재 독단 불통 오세훈 OUT’ ‘서울시가 던진 쓰레기 폭탄, 마포구가 죽어 간다’. 중앙일보 본사가 있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거리에 걸린 문구다. 지난 8월 서울시가 상암동에 쓰레기소각장(공식 명칭은 광역자원회수시설)을 짓기로 하자 도로 옆과 아파트 벽에 플래카드가 줄줄이 붙었다. 주민들의 집회·시위가 계속된다. 국민의힘이 수도권 출마를 선언한 하태경 의원을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 저격용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자 정 의원이 “소각장 폭탄 투하로 민심이 매우 흉흉한데 (하 의원이) 올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상암동은 정 의원 지역구(마포을)에 속해 있다. 동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소각장 건설에도 주민 결사 반대
성범죄자 격리 시설 지정은 난제
해결 방안 빠진 법안, 설득력 없어

서울에 소각장 네 개(강남·양천·노원·마포구에 하나씩)가 있다. 전체 25개 구 중 21개에는 소각장이 없다. 그런데 이미 소각장이 있는 마포구에 추가로 짓기로 했다. 상암동 소각장 바로 옆에 더 큰 규모로 건설하는 게 서울시 계획이다. ‘소각장이 1+1 상품이냐’는 문구가 나부낀다. 서울시는 유해물질을 다 걸러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그렇게 안전하면 강남 중심이나 용산에 지으라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와 비슷하다.

마포구에 소각장이 없었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의 다른 곳으로 정해졌어도 반대 플래카드와 집회는 등장했을 것이다. 어느 곳이든 “남의 동네 쓰레기를 왜 내 집 앞에서 태우느냐”는 항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독박 부담과 무임승차는 지극히 불공정하다는 게 이 시대 상식이다. 주민들의 강렬한 저항에는 “집값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깔렸다.

법무부가 지난달 26일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시했다. 13세 미만 대상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거나 성폭력 범죄로 3회 이상 유죄 판결을 받은 이 중 10년 이상의 징역형과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선고받은 자는 일반 주거지가 아닌 특정 시설에서 거주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면 조두순·박병화는 어디에 살게 될까? 법안을 읽고 또 읽었다. 답이 아리송했다.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를 관할하는 광역자치단체에 소재한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이 설치·운영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지정하는 시설’이라고만 적혀 있다. 주거지가 어디가 될 것이냐를 대통령령으로 미뤄 놓은 구조다. 법안 공개 회견에서 이 모호함에 대한 질문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현재 단계에서 시설의 지역이나 개수 등을 설명하면 건설적 논의가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 법무부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시설을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조직은 출소자의 재활을 돕는 곳이다. 과거에 ‘갱생원’이라 불렸다. 갈 곳 없는 이에게 거주 공간을(최대 2년), 원하는 이에게 직업 교육을 제공한다. 전국 26개 지역에 시설이 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그곳에 여성 거주자가 있다. 미용 기술 등을 배우러 오는 출소자도 있다. 동선을 분리한다 해도 고위험 성범죄자와 한 공간에 있게 하는 것은 ‘보호복지’ 취지에 어긋난다. 법무부 간부에게 물었더니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이 26개 시설이 되든, 다른 곳이 되든 인근 주민들의 ‘결사반대’는 명약관화하다. 소각장 신설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산이나 섬(미국 워싱턴주에선 섬에 가둔다)에 살게 하기도 어렵다. 위헌 판정이 난 보호감호와 다를 게 없다. 그들이 어디에 살게 될지에 대해 한 장관이 답해야 한다. “선거용 입법 쇼”라는 야당의 비판을 무색하게 할 신박한 해결책이 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일단 법부터 통과시켜 달라고 하는 것은 국민과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의원에게 예의가 아니다. 합리성과 원칙을 강조하는 한 장관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