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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장혁의 시선

‘박근혜와 이재명’ 그리고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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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변호사·사회부장

임장혁 변호사·사회부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9월 27일)과 함께 시작된 지난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고군분투했다. 그는 기세를 회복한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영장이 한 번 기각됐다고 무죄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너무 오래 간다”(10월 11일)며 맞섰다.

반면 검찰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유창훈 판사로부터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평가를 받은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원지검에 돌려보냈다. 남은 사건들과 뭉쳐 3번째 영장청구를 노리는 와신상담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도 “영장 청구는 과욕이었거나 최소한 실기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재명 수사, 제3자뇌물 늪 빠져
성남FC사건에 박근혜 전례 기대
정권마다 유사 사건 반복할 수도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압송(1월 17일) 이후 급물살을 탄 대북송금 수사는 ‘배임(대장동)·제3자뇌물(성남FC)’의 첫 조합이 민주당의 방탄에 막힌 검찰에 한 줄기 빛 같았다. ‘조폭 출신’과의 커넥션은 부패 이미지를 각인시킬 카드로 여겨졌다. ‘특혜’ 대 ‘정책 결정’이라는 프레임 대결이 팽팽한 배임 혐의만으로 ‘구속’이라는 고지에 닿을 수는 없지만, ‘대북송금=뇌물’이라는 등식이 완성되면 상황이 반전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두 번째 ‘배임(대장동)·제3자뇌물(대북송금)’ 조합은 그래서 준비됐다. 제3자는 성남FC와 북한이다.

그러나 비장의 무기 제3자뇌물(형법 130조)은 결국 검찰의 제 발목을 자르는 지뢰가 됐다. 130조는 어떤 공무원과 관련된 제3자가 업자로부터 받은 돈이 공무원의 주머니로 간 흔적이 전무함에도 그 공무원을 잡아야할 때 쓰는 제3의 길이다. 만약 제3자와 공무원이 한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면 그 유명한 ‘경제공동체’ 법리로, 그렇지 않더라도 그 두 사람이 금품수수를 구체적으로 모의했다면 공모공동정범 법리로 문제의 공무원에게 일반 뇌물수수죄(129조 1항)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럴 수 없을 때 꺼내는 게 130조다. 자칫 호가호위(狐假虎威) 상황에서 여우가 한 짓을 알지 못한 호랑이까지 걸려드는 일을 막기 위해 둔 안전핀이 ‘부정한 청탁’이다. 돈을 준 이에게 청탁할 현안이 있다는 것을 공무원이 인식하고도 제3자가 돈을 받게 내버려뒀어야 죄를 물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성태가 대북사업권 등을 기대하고 밀반출한 외화 800만 달러를 북에 전달했고 이 과정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함께했다는 증거를 찾아낸 수원지검은 ‘부정한 청탁’ 앞에 얼어붙었다. 이 과정을 “이재명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이 꼭 필요했지만 이화영의 입은 철옹성이었다. 지난해 10월 구속 이후 계속 혐의가 추가돼 구속 기간이 늘어나고, 측근들에 이어 쌍방울 계열사에 취업시켰던 아들마저 검찰에 불려왔지만 버텼다.

검찰은 수사 착수 1년이 넘은 지난 6월에야 이화영에게 그 말을 받아냈지만 동시에 ‘자발적으로 한 말이냐’는 시비를 걱정해야 했다. 그 말에 대한 이화영의 ‘증거동의’를 법정에서 받아내 ‘진술의 임의성’을 인증받겠다는 일념으로 3개월 넘게 소모전을 벌이다 실패했다. 과도한 집념은 결국 독이 됐다.

그럼에도 한 장관은 왜 당당할까. 검찰 안팎에선 앞서 기소한 성남FC 수사에 대한 기대가 그 배경으로 꼽힌다. 성남FC에 후원금을 제공한 두산건설·네이버·차병원그룹 등은 토지 활용과 관련한 뚜렷한 민원이 있었는데, 정진상 당시 성남시 정책실장이 이들의 청탁을 처리하면서 후원금 제공 방식 등을 조율했다는 사실이 정진상 본인 진술 등으로 뒷받침됐다. 성남시의 모든 주요 문서는 정진상의 결재를 거쳐 이재명 시장에게 올라가는 구조였기에 두 사람의 공모관계 등은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같은 제3자뇌물이지만 성남FC 후원금 재판의 관전 포인트는 ‘부정한 청탁’이 아니다. 주식회사 형태지만 공공성이 강한 성남FC에 준 돈을 뇌물로 볼 수 있느냐가 문제다. 검찰이 품는 희망의 근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이 면세점 특허 재개 등의 현안을 풀려던 롯데그룹에게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이 주도한 K스포츠재단에 헌납하라 요구한 70억원을 뇌물이라고 봤다. K스포츠재단은 형식상 주식회사보다 공공성이 강한 비영리 재단이었다.

이 사건의 끝에서 웃을 사람이 한 장관일지 이 대표일지에 대한 사법적 결론은 5년 이상 지나야 나온다. 요즘 재판이 그렇다. 국민은 둘의 정치적 명운을 그 전에 가려야 한다. 이왕 늦는 김에 이 대표에게 적용된 제3자뇌물 2제는 반드시 전원합의체에 붙였으면 한다. 이대로라면 다음 정부의 검찰도 전 정부나 야당의 유력자를 쳐다만 봐도 생기는 제3자뇌물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 무한반복의 문을 연 것이 박 전 대통령에게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