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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억 횡령’ 이홍하에 멍든 ‘빛고을’의 사학교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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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교비를 1000억원이나 빼돌린 설립자가 더는 학교 명예를 떨어뜨려선 안 됩니다.”

지난달 31일 광주광역시 D여고의 학부모 김모(50)씨가 한 말이다. 그는 “설립자 이홍하씨의 출소 소식을 접한 뒤 밤잠을 설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학교 돈 1003억원을 횡령해 2013년 4월 구속됐다가 지난달 25일 만기 출소했다.

학부모들은 이씨가 학교로 돌아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설립자가 횡령한 돈을 모두 변제하면 학교법인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와서다. 김씨는 “학교와 교사·학생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장본인이 학교 운영에 관여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학교 돈 1003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감된 이홍하씨가 지난달 25일 만기 출소해 광주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황희규 기자

학교 돈 1003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감된 이홍하씨가 지난달 25일 만기 출소해 광주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황희규 기자

이씨는 사학비리와 횡령 사건을 저질러 수차례 형사처벌을 받았다. 고교 생물교사로 재직하며 목욕탕을 운영한 수익금으로 사학재단을 만든 인물이다. 1977년 학교법인을 만든 그는 2011년까지 전국에 대학 6개와 고교 3개를 설립했다. 학교를 세워 등록금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다른 학교를 짓는 이른바 ‘돌려막기’ 방식을 썼다.

문어발식 확장은 학교법인들의 부실 운영을 가져왔다. 결국 그는 1997년 10월 42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됐다. 2007년 2월에는 서남대 교비를 빼돌렸다가 유죄 판결을 받고도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거액을 횡령하고도 번번이 자리를 지킨 그는 2013년 3월 교도소에 또 수감됐다. 이씨는 이때도 심장혈관 시술을 이유로 풀려났으나 검찰에 의해 보석이 취소됐다. 당시 검찰은 그가 옥중에서 팔굽혀펴기를 한 정황까지 내밀며 구속수사 의지를 관철시켰다. 수사 결과 이씨는 대학 4곳의 교비 898억원 등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씨가 교도소와 학교를 오가는 사이 그가 세운 학교는 하나씩 무너졌다. 이씨가 설립한 대학·고교 9곳 중 폐교를 면한 곳은 고교 2곳과 대학 1곳 등 3곳이다. 이중 D여고는 이씨가 처음으로 만든 학교법인이어서 복귀 의지가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D여고는 광주 지역에서 명문 고교로 이름난 학교다.

이씨 사학비리의 생채기가 남은 곳은 또 있다. D여고 입구에 40년째 흉물로 방치된 서진병원 건물이다. 서남대 의대 유치를 위해 1982년 착공한 건물은 1995년 완공 단계에서 공사가 멈췄다. 시민들은 6890㎡(약 2080평) 대지에 들어선 12층짜리 건물을 “유령건물” 또는 “이홍하 건물”이라고 부른다.

도심 속 유령건물 철거는 이씨 출소를 전후로 더 큰 관심사가 됐다. 광주시의회가 장기간 방치된 건축물을 정비할 조례안을 최근 통과시킨 게 대표적이다. 검찰이 ‘사상 최대 교비 횡령사건’으로 규정한 이씨 건물이 철거돼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40년 넘게 이어진 사학비리 상징물이 없어져야만 학교와 학생들의 상흔도 치유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