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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없어" 단호한 이스라엘…'느린 습격'으로 하마스 힘 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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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교전 중인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근거지 가자시티를 에워싸고 진격하고 있다. 외신은 이스라엘이 대규모 전면전 대신 주요 도로를 차단한 채 천천히 진격하는 "느린 습격(Slow incursion, 로이터통신)"을 택했다고 전했다. 장기전을 통한 힘 빼기로 하마스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인질 구출과 석방 협상을 위한 여지를 남겨 놓기 위한 전술이란 분석이다. 이스라엘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하마스도 대전차 무기 등으로 대항하면서 교전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3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가자지구 지상전에서 다수의 하마스 테러범을 사살하고 약 300곳의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특히 이날 처음으로 5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하마스의 지하 터널 안쪽을 공격했다. 이 밖에도 하마스의 로켓 발사대, 군용 건물 등을 가격했다. 이에 맞서 하마스 무장조직 알카삼 여단은 이날 오전 가자지구 남쪽으로 진격해 온 이스라엘군을 향해 대전차 미사일로 공격을 하는 등 교전을 벌였다.

앞서 3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성명을 통해 "미국이 진주만 폭격, 9·11 테러 이후 휴전에 동의하지 않았듯 가자지구에서 휴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의 지상 작전으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자 유엔이 지난 27일 긴급총회 결의를 통해 요구했던 인도주의적 휴전을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미국 백악관도 "지금 휴전은 올바른 답이 아니다"고 이스라엘을 거들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단계적 지상전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지상전에 나선 이스라엘방위군(IDF)의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단계적 지상전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지상전에 나선 이스라엘방위군(IDF)의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남북 양쪽에서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 지난 27일 가자 지구 북쪽에 교두보를 확보한 이스라엘군은 탱크와 장갑차, 드론과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 가자 시티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예상보다 느린 진격 속도에 대해 아모스 야드린 전 이스라엘 군사정보국장은 로이터에 "민간 사상자를 줄이고 하마스 테러리스트를 최대한 많이 죽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이스라엘 군사령관도 "땅굴에 숨어있는 하마스 대원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시야 안에서 확실하게 사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남쪽에서는 이스라엘군이 살라 알딘 도로를 점령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날 보고서에서 "최소 한 대의 불도저와 다른 장갑차를 포함한 이스라엘 병력이 살라 알딘 도로에 진지를 잡았다"고 밝혔다. 총연장 45㎞의 이 도로는 이집트와 맞닿은 남쪽 라파 검문소에서 북쪽 이스라엘 국경의 에레즈 검문소까지 잇는다.

외신들은 이스라엘군이 가자를 남북으로 가르는 이 도로를 장악해 하마스를 가자시티에 가둬둔 뒤 섬멸전에 나설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로이터는 "이 도로를 차단하면 가자지구는 사실상 동강 나고 가자시티는 남쪽 지역으로부터 고립된다"고 지적했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기자 유사프 알 사이피가 30일 영국 스카이뉴스에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살라 알딘 도로의 교차로에서 달리던 승용차가 탱크를 발견하고 방향을 돌리려는 순간 탱크의 포격으로 파괴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BBC도 이날 이스라엘군 탱크와 불도저가 도로를 막고 있는 영상을 제보 받았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단계적 지상전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지상전을 위해 배치된 이스라엘방위군(IDF) 전차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단계적 지상전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지상전을 위해 배치된 이스라엘방위군(IDF) 전차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느린 습격'이 하마스 섬멸과 인질 구출이란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날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하마스 해체뿐 아니라 인질을 데려오는 것 모두 군 작전 활동 확대로 달성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같은 판단은 카타르를 통한 인질 석방 논의가 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의 데이비드 바르니아 모사드 국장이 지난 29일 도하를 방문, 카타르 고위 당국자들과 인질 석방에 대해 논의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카타르는 현재 하마스의 유일한 대외 협상 창구로 인질 석방을 중재해 온 국가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본격화하면서 인질 구출에도 성공했다. 이스라엘군은 30일 하마스가 억류하던 230여명의 인질 가운데 이스라엘 군인 오리 메기디시를 구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군 대변인 조나단 콘리쿠스 중령은 CNN에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특별작전이 있었다"며 인질 행방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또다른 구출 작전을 꾀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반면 하마스는 같은날 이스라엘 국적의 여성 인질들을 찍은 영상을 유포했다. 영상에서 3명의 여성 인질은 네타냐후 정권의 정치·안보·군사·외교 실패를 비난하면서 인질 석방에 응하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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