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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 12만명 있는데…가자병원 10곳이 전쟁 '최전선'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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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지상군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를 포위한 가운데, 이곳에 있는 병원 10여곳이 양 측간의 최전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이들 병원의 지하가 하마스 근거지로 쓰이고 있다며 병원 주변에 대한 공습의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제하는 서안지구에도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이뤄지는 등 전투가 확산될 조짐이다. 

팔레스타인들이 30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가자시티에 있는 알 쿠드스 병원에 모여 있다. 전날 이 병원 주변이 공습받았다. EPA=연합뉴스

팔레스타인들이 30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가자시티에 있는 알 쿠드스 병원에 모여 있다. 전날 이 병원 주변이 공습받았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 "하마스 근거지…병원 연료로 터널 환기" 


CNN·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는 30일(현지시간) 가자 북부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 있는 시파·알 쿠드스·인도네시아 병원 등 주요 의료시설 주변이 지난 주말 폭격을 당했다고 밝혔다. 현지 의료단체는 이스라엘군이 환자와 의료진, 피란민 등을 강제로 철수시키기 위해 병원 바로 옆을 고의적으로 공습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달 중순부터 이스라엘군은 가자 북부 병원에 남부로 대피하라고 촉구해왔다. 지상군이 투입된 지난 27일 이후엔 병원에서 즉시 대피하라며 경고 수위를 한층 높였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가자시티의 알시파 병원 지하를 지휘본부로 쓰는 등 병원을 근거지로 활용하고 있고 지목했다. 또한 하마스가 이들 병원의 연료를 빼돌려 대규모 지하터널을 환기하는 데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의 이런 판단은 체포한 하마스 조직원들과 알시파 병원 등을 방문한 이스라엘 정보 요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WSJ은 전했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 근동정책연구소의 군사분석가 마이클 나이츠도 "병원 지하에 대형 터널을 만드는 건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슬람국가(IS)를 포함한 여타 무장 단체들이 사용하는 전술"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하마스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스라엘군 공습을 피해 집을 떠난 팔레스타인 여성과 어린이들이 지난 25일 가자시티 최대 병원 알시파 병원에서 머물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군 공습을 피해 집을 떠난 팔레스타인 여성과 어린이들이 지난 25일 가자시티 최대 병원 알시파 병원에서 머물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섬멸을 위해 가자의 병원을 공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인명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OCHA에 따르면 가자 북부에서 아직 운영 중인 병원 10여곳에는 환자 수천 명, 의료진 수백명, 그리고 피란민 약 12만명이 머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가 연결된 환자 등 중상을 입은 이들이 많아 대피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야코브 아미드로르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민간인 사상자에 대한 민감성과 미국의 압박을 고려해 병원 폭격 가능성은 작다"면서 "지상군이 병원에 직접 접근하거나 병원 인근 지역을 포위해 하마스를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안지구도 이스라엘 공습이 강화되면서 또 다른 전선이 될 조짐을 보인다. 이날 서안지구 북부 제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인 최소 4명이 숨지는 등 폭력 사태가 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이슬라믹 지하드 분파인 제닌 여단의 창립자 위암 하눈이 숨졌다. 


이스라엘군은 서안지구에서 일부 팔레스타인인을 하마스를 지원한 혐의로 체포했으며, 이스라엘 정착민은 폭력 시위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을 하마스 지지자로 보고 총격을 가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반면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측은 하마스 등 무장세력과 관련이 없고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생계를 유지할 뿐이라고 맞섰다.

팔레스타인 구조대와 사람들이 지난 30일 서안지구 도시 제닌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을 수색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구조대와 사람들이 지난 30일 서안지구 도시 제닌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을 수색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OCHA는 서안지구에서 양측의 무력충돌로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일어난 지난 7일 이후 약 3주간 이스라엘군이나 이스라엘 정착민에 의해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람의 수를 115명으로 추산했다. 서안지구는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영토지만, 동예루살렘·베들레헴 등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민 50만명 이상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스라엘군이 곳곳에 상주하고 있다. 서안지구 내 팔레스타인 인구는 약 300만명이다.

팔 측 사상자 집계에 바이든 "진실 말 안해" UN "명확한 출처"

한편 가자지구 보건부가 발표하는 팔레스타인 측 사상자 집계에 대한 진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앞서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에 대해 팔레스타인 쪽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신뢰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 기자가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를 언급하며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이스라엘이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가자지구의 다른 행정조직과 마찬가지로 보건부 역시 하마스가 통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는 달리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는 자체 검증을 통해 가자 보건부 발표를 신뢰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유엔 측은 "명확한 출처이기 때문에 가자 보건부가 발표하는 데이터를 계속 보고서에 포함할 것"이라고 했다. 가자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7일부터 30일까지 가자지구의 누적 사망자 수는 최소 8306명으로 67%가 어린이(3457명)와 여성(213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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