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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부동산 투자도 짭짤…年 3조 버는 하마스 '은밀한 돈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질을 데려가면 1만 달러(약 1300만원)와 아파트를 준다고 했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신베트(Shinbeit)가 체포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대원의 진술이다. 하마스의 새벽 공습에 가담했던 이 대원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신베트가 공개한 심문 영상에서 하마스 지도부가 거액의 포상금과 생활 보장을 약속했다고 털어놨다.

가자지구의 경제는 수년간 파탄 상태였다. 전쟁 직전 주민의 실업률은 47%에 이르렀다. 1인당 소득은 2007년 하마스 장악 이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서안지구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하마스는 이번 이스라엘 남부 기습에서 로켓 수천 발을 쏘고, 수년에 걸쳐 건설한 대규모 지하 터널을 활용했다. 하마스 대원의 월급은 가지지구에선 고소득에 해당하는 5000셰켈(약 17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최대 3만 명으로 추정되는 병력, 다수의 신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하마스의 재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대원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대원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최근 이스라엘 현지 매체 예루살렘포스트엔 "하마스가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20억~25억 달러(약 2조7000억원~3조3000억원)에 달한다"는 내용의 글이 실렸다. 오랜 기간 하마스의 자금 경로를 연구한 엘리 포데 히브리대 이슬람·중동학과 교수, 이스라엘 싱크탱크 미트빔의 중동 경제 연구원 이츠하크 갈이 함께 쓴 글이다. 하마스의 자금줄은 크게 5개 정도인데, 이 중 일부는 불법적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아울러 미국 등 서방이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금융 제재를 했지만, 그간 자금 추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밀수업자도 세금…각종 징세로 자금 충당"  

포데 교수와 갈 연구원에 따르면 하마스는 가자지구 통치 이후 자체적인 징세 체계를 구축했다. 하마스는 라파 검문소를 통과하는 연료·담배 등 이집트산 수입품과 케럼 샬롬 교차로로 들어오는 이스라엘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왔다. 

뿐만 아니라 검문소 등을 통하지 않는 밀수업자들에게도 세금을 걷고 있다. 과거엔 주로 이집트와 가자를 연결하는 지하 터널을 통해 밀수가 이뤄졌다. 이집트 정부가 이들 '밀수 터널'을 상당수 파괴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밀수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검문소를 거쳐 들어오는 구호품. AFP=연합뉴스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검문소를 거쳐 들어오는 구호품. AFP=연합뉴스

하마스는 가자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한다. 특히 이스라엘의 허가 아래 가자 주민 수천 명이 이스라엘에서 일자리를 얻게되면서 하마스가 쥐는 세금 규모가 더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포데 교수 등은 하마스가 징수하는 관세와 세금의 총액을 연간 5억 달러(약 6700억원)로 추정하면서 이 자금이 주로 무기 구입 등에 쓰이고 있다고 봤다.

미국 재무부 고위 관리로 일했던 매튜 레빗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연구원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하마스는 가자지구 점령 후 각종 세금으로 재산을 불렸다"고 지적했다.  

이란 지원, 지지단체 기부…"해외 부동산도 투자" 

군사 자금 면에서 하마스의 '최대 후원자'는 이란이다. 하마스 고위 관계자도 "우리에게 돈과 무기를 주는 나라는 이란"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서방 측은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이란이 무기 제공과 별도로 하마스에 연간 약 1억 달러(약 1300억원)의 군사 작전 자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마스의 새벽 기습 후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은 하마스의 군사 조직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이번 이스라엘 공격에 가담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지역에서 회수해 지난 26일 공개한 무기들. 이스라엘군은 이 중 이란산, 북한산 무기들이 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지역에서 회수해 지난 26일 공개한 무기들. 이스라엘군은 이 중 이란산, 북한산 무기들이 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이란 외에도 해외에 있는 하마스의 지지 단체나 개인들이 보내는 기부금이 연간 수억 달러에 이르고, 대부분 군사용으로 사용된다고 포데 교수와 갈 연구원은 주장했다. 아울러 하마스는 비밀리에 해외 부동산과 기업에 투자해 수억 달러의 비자금을 확보하고, 암호 화폐로 자금을 은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서방 승인한 카타르 원조…"하마스 금고 채워" 

국제사회의 원조 일부가 하마스의 금고를 채우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극빈 상태에 머물고 있는 가자지구를 돕기 위해 서방은 중동의 석유 부국 카타르에 원조를 요청했다. 카타르는 유엔과 미국, 이스라엘의 동의를 받고 연간 총 4억 달러(약 5400억원)가량을 가자지구에 제공하고 있다.  

존 브레넌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미 NBC뉴스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재정적 여유가 있는 카타르의 지원이 필요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카타르의 원조는 공식적으론 주로 극빈층 가정에 현금 지급, 가자지구의 발전소 연료 구입 등에 사용된다. 지난 7일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 석방을 두고 카타르가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주효했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이후 유엔이 운영하는 대피소에서 가자지구 주민들이 물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이후 유엔이 운영하는 대피소에서 가자지구 주민들이 물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WSJ에 따르면 전·현직 서방 안보 당국자들은 하마스가 카타르의 지원 자금 일부를 군사 작전을 위해 빼돌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하마스의 대변인 하젬 카셈은 "가자지구 통치에 사용되는 재원과 군사 자금은 별개"라고 반박했지만, 군사 자금 출처에 대해선 언급을 거부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다만 카타르는 모든 원조가 민간인들에게 전달되도록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외신에 따르면 카타르의 지원금은 유엔에 등록된 은행 계좌로 송금 후 인출된 뒤 밀봉 형태로 유엔과 이스라엘의 호송을 받으며 가자지구에 전달된다. 

"자금 추적 소홀로 기습 예측 못해" 

현재 가자지구 재정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곳은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다. PA의 집권당 파타는 2006년 선거에서 하마스에 패배한 뒤 가자지구에서 축출됐다. 그럼에도 인도주의적 명목과 언젠가 하마스의 통치가 끝날 것이란 기대로 가자지구를 계속 지원해왔다. 

PA는 연간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가자지구에 보내고 있다. PA가 보내는 돈은 가자지구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공무원·교사·의사 등의 급여, 수도·전력 공급과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재원이 되고 있다. 유엔 산하 기구와 PA 등이 운영하는 학교·병원들도 하마스의 통치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이 있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후 집을 떠나 유엔이 마련한 대피소에 있는 가자지구의 어머니와 두 자녀.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후 집을 떠나 유엔이 마련한 대피소에 있는 가자지구의 어머니와 두 자녀.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상황을 두고 WSJ은 "서방과 PA, 이스라엘이 의도치 않게 하마스가 주머니를 채우도록 도운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포데 교수와 갈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이번 기습 작전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정보와 군사적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일 뿐 아니라, 하마스가 어떻게 자금을 모아 어디에 쓰는지 추적에 소홀했던 점도 원인"이라고 짚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이후 미국 등 서방은 하마스의 자금 관련 조직원과 조력자에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하마스의 자금 차단을 위한 국가 간 연합체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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