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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집값 거품 책임자의 엉터리 반성문

중앙일보

입력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 거품을 초래한 장본인이 반성문을 썼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펴낸 『부동산과 정치』란 제목의 책이다. 김 전 실장은 이 책의 맨 앞에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못 잡았다. 그냥 못 잡은 정도가 아니라 두 배 넘게 뛰어버린 아파트 단지가 허다했다”며 실패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연이어 전세금도 급등했다. 어떠한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책의 나머지 부분은 진솔한 반성보다는 자기변명에 가깝다. 규제 일변도의 무리한 정책을 쏟아내며 부동산 시장을 왜곡한 것에 대한 후회나 성찰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더 일찍, 더 센 규제의 칼을 휘둘러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는 식이다.

김수현의 신간 『부동산과 정치』
“더 세게 규제 못한 게 실패 원인”
잘못된 처방 반성 않고 변명 일관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네 가지 책임’의 첫째로 부동산 대출 증가를 꼽았다. 그러면서 “나는 문재인 정부가 적기에 더 강한 대출 규제와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지 못했던 것을 가장 중요한 부동산 실패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우리가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부동산 대출은 더 세게, 더 확실히 조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더 센 규제의 예고편을 틀고 있다.

 김 전 실장은 대출 규제를 더 세게 하지 못했던 책임을 기획재정부와 금융당국에 돌렸다. 그는 “기재부는 효과가 더디고 논란이 많은 세제 강화는 받아들이면서 유동성 축소나 강한 대출 규제에는 부정적이었다”고 썼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대출 규제를 더 세게 하려는 의지가 있었지만 경제 관료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언젠가 김 전 실장이 부동산 정책의 총괄 사령탑으로 복귀한다면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공무원들은 일제히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세금에 대한 김 전 실장의 남다른 소신도 충격적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종부세(종합부동산세)를 처음 설계하고 도입했던 사람”이 자신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고가 주택 보유자나 다주택자에게만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는 주장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된다. 김 전 실장은 고가 주택 보유자나 다주택자를 봐주자는 게 전혀 아니다. 오히려 1주택자를 포함한 모든 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금 인상을 주장한다.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바로 주택 공시가격 인상이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올리면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은 저절로 커진다. 세법을 고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국회의 견제도 받지 않는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선 해마다 공시가격을 큰 폭으로 올렸다. 이렇게 해서 집값을 잡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결국 집값도 못 잡고 인심만 잃었다.

 지난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 최악의 실책은 부동산이었다. 김 전 실장도 인정했듯이 어떠한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때 유행했던 ‘벼락거지’란 말은 무주택자들의 절망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말대로 집을 사지 않고 기다렸던 사람들만 바보가 됐다. ‘삼호어묵’이란 필명을 쓰는 윤세경 작가는 “나라에 눈뜨고 코 베인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청년들은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패닉바잉’(공황 매수)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군사작전 식으로 밀어붙인 임대차법과 그로 인한 전셋값 폭등이 계기가 됐다.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로 집을 샀던 이들은 이자 부담 급증으로 또다시 좌절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말이 새삼 다시 떠오른다. 그는 2020년 6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일본처럼 우리도 곧 집값이 폭락한다던 진보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다 뻥”이라며 “대통령이 참모로부터 과거 잘못된 신화를 학습했구나. 큰일 나겠다 싶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에게 잘못된 신화를 주입한 참모는 누구였을까. 조 교수는 실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김 전 실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실패의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건 꼭 필요한 작업이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실패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으면 안 된다. 독한 약을 써서 환자의 몸이 망가졌는데 더 독한 약을 썼어야 마땅했다는 식이면 정말 곤란하다. 이미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두 번이나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무주택 서민들이었다. 이런 실패의 책임자가 세 번째로 나서는 일은 없길 바란다.

글 = 주정완 논설위원, 그림= 윤지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