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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조 퇴직연금 시장 요동, 수익 높은 증권사로 ‘머니 무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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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호 12면

금융시장 패러다임 바뀐다

350조원에 달하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지난해 7월 사전 지정 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본격 도입됨에 따라 높은 수익률을 앞세워 신규 자금을 유치하려는 증권사와 이를 수성하려는 은행권의 전략 경쟁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비교공시에 따르면 3분기 퇴직연금 적립금(은행·증권사·보험사)은 349조8935억원에 달한다. 업권별로 보면 여전히 은행 점유율이 52%로 압도적이지만 지난해 말 대비 적립금 증가율에서는 증권사가 약 9%로 은행(6.5%), 보험사(0.41%)를 크게 앞질렀다. 퇴직연금사업자 중 증권사 14곳의 적립금은 80조5570억원으로 지난해 말(73조8467억원)보다 9.09%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의 적립금은 181조9257억원으로 지난해 말(170조8255억원) 대비 6.5% 증가에 그쳤다.

적립금 증가율 증권 9.1% vs 은행 6.5%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퇴직연금 시장에선 후발주자였던 증권사로 ‘머니 무브’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디폴트옵션 시행 이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증권사 상품에 대한 투자 관심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별다른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더라도 미리 지정한 상품으로 적립금이 자동 투자되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연금 선진국에선 2000년대 초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해 연평균 6~8%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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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은행·보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권사의 수익률이 높은 편이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증권사의 3분기 원리금비보장(실적배당형) 기준 DC형 평균 수익률은 7.9%에 달했다. 증권사별로는 ▶삼성 9.23% ▶현대차 8.87% ▶유안타 8.71% ▶하이투자 8.67% ▶하나 8.62% ▶NH투자 8.2%로 8%대 수익률을 보였다. KB 7.82%, 대신 7.61%, 신영 7.19%, 한화투자 7.08%는 7%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기업이 직접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에서도 증권사 운용 수익률이 높았다. 올 3분기 원리금보장기준 DB형의 1년 평균 수익률은 증권사가 4.21%로 은행(3.52%)과 보험사(3.88%)에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별로는 KB가 4.79%로 가장 높았고, 한국투자(4.58%)·대신(4.55%)·신한투자(4.47%)·하나(4.41%)·NH투자(4.38%)·삼성(4.31%)·미래에셋(4.25%)·신영(4.04%)의 평균 수익률이 은행권을 앞섰다.

증권사 운용 퇴직연금 상품은 높은 수익성과와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업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8월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2023년 우수 퇴직연금사업자’에도 증권사 두 곳(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총 40개 사업자가 참여한 퇴직연금사업자 평가는 운용 역량과 수익률, 조직·서비스 역량 등을 평가해 상위 10%에 선정된 사업자를 우수 사업자로 선정한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글로벌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를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는 ‘MP(Miraeasset Portfolio)구독 서비스’로 가입자 자산관리의 편리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MP구독 서비스는 퇴직연금을 직접 투자하고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고객, 복잡한 절차 없이 간편하게 포트폴리오를 매수하기 원하는 고객을 위한 서비스다. 가입자 연령과 투자성향에 맞춰 총 4가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최대 주식 비중이 20%부터 70%까지 구성되어 있으며, 주식 비중이 높을수록 기대수익과 변동성이 커지는 구조다.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 가입자라면 별도의 수수료 없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올해 8월 말 기준 약 9000명의 가입자가 약 6500억원의 퇴직연금 자산을 MP서비스로 운용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자체 개발한 자산운용전략 시스템 ‘K-ALM’(Asset-Liability Management)을 기반으로 기업별 맞춤 운용전략을 제시해 DB형 퇴직연금 운용성과를 크게 높였다. 운용 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적립금운용 컨설팅(K-PIS) 제공, 중장기 적립금 운용 계획 수립, 상품 다변화 추진 등에 두루 기여했다는 평가다. 홍덕규 퇴직연금본부장은 “의무 도입된 디폴트옵션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DC·IRP 고객을 대상으로 양질의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조직 전문성과 시스템을 지속 강화하며 퇴직연금 관련 서비스 품질을 높여갈 것”이라고 전했다.

퇴직예정자 연령대별 연금 강의도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노후 대비를 위해 높은 성과를 원한다면 성장주 중심의 원리금비보장 상품에 주목할 만하다.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원리금비보장 기준 DC형 수익률 1위를 기록한 삼성증권은 미국 테크, 2차전지, 반도체 관련 ETF와 성장주 중심의 주식형 펀드 및 채권의 비중 확대 전략으로 가입자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삼성증권은 가입자들이 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현금성 자산 과다 보유 가입자를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등 가입자 관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유정화 삼성증권 연금본부장 상무는 “퇴직연금의 수익률 관리를 위해 차별화된 서비스, 좋은 상품, 선진화된 시스템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연금 가입자의 최고의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입자들의 노후설계와 금융투자 교육은 물론 연금 전문인력 양성을 통한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에도 열을 올린다. NH투자증권은 법인 및 단체를 대상으로 ‘100세시대자산관리클래스’를 열어 직장 새내기, 퇴직 예정자 등 연령대별 맞춤형 강의를 제공한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보험계리사, 노무사 등 분야별 전문가가 ‘퇴직 전 준비하는 노후설계’, ‘연금제도와 퇴직연금’ 교육을 진행한다. DC형과 IRP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는 신한투자증권은 영업점 내 연금관련 전문인력인 연금프로와 연금마스터를 선정해 연금고객 니즈에 맞는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증권은 직원 교육 프로그램인 ‘하나증권 퇴직연금 팝업오피스’를 열어 전직원을 퇴직연금 전문가로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금 상품에 가입했다면 노후자산이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KB증권은 퇴직연금 자산관리컨설팅센터를 통해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주기적으로 현금성 자산관리, 만기 안내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가입자는 매월 발송되는 잔고 및 수익률 현황을 참고해 상품 재투자 시 전문 상담 및 수익률 관련 컨설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KB증권은 지난해부터 고금리 시장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 상품에 채권을 포함시킨 매매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다. KB증권 관계자는 “대면·비대면 연금컨설팅 서비스 확대부터 모바일 브랜치 채널 구축, 로보어드바이저 연금 자문서비스 확대 등 질적·양적 성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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