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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차 크면 혈관 질환 위험, 매일 30분 이상 운동하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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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호 32면

헬스PICK

완연한 가을이다. 이젠 한낮 최고 기온도 20도를 넘지 않는 날이 제법 많다. 일교차는 전국 어디에서나 10도 이상 벌어진다. 아침과 저녁엔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다. 여름을 지나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이맘때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시기다. 생체시계가 날씨·기온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탓이다. 한마디로 신체의 적응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진다. 기온 변화에 민감한 신체는 면역력이 약해지고 피부는 건조해진다. 해가 짧아져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가 급격히 줄면서 계절성 우울증이 생기기도 하고 활동량이 떨어지면서 살이 찌기 쉽다. 여러모로 건강에는 악조건이다.

기온 변화, 혈관 건강에 치명적

특히 이런 계절적인 변화는 혈관 건강에 가장 치명적이다. 낮아진 기온은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액의 점도를 높여 혈압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온이 1도 내려갈 때마다 수축기 혈압은 1.3㎜Hg, 이완기 혈압은 0.6㎜Hg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된다. 실제로 11월이 되면 심·뇌혈관 질환자 수는 급증한다. 보건의료빅데이터에서 심혈관 질환 월별 환자 추이(2022년 기준)를 보면 1월 32만2508명에서 2월 29만9516명으로 툭 떨어진 뒤 3월에 증가해 들쭉날쭉한 모양새로 유지되다가 10월에 31만2567명으로 다시 떨어진 후 11월에 33만3726명으로 급격히 늘어난다. 뇌혈관 질환의 경우도 추이는 대동소이하다. 10월에서 11월로 넘어가는 바로 이 시기에 심·뇌혈관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급성 심근경색 등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유는 있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높아진 혈압은 혈관을 심근경색, 심장마비, 뇌출혈, 뇌경색 등 심·뇌혈관 질환이라는 폭탄의 불씨인 혈전이 생기기 쉬운 토양으로 만든다. 혈관 벽에 기름과 염증이 뭉쳐서 생긴 것을 동맥경화반이라고 하는데, 혈압이 높아지면 동맥경화반이 압력에 불안정해지면서 파열돼 혈관 벽에서 떨어져 나가 혈소판과 엉겨 붙으면서 결국 혈전이 된다. 이 혈전이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 막힌 뇌혈관이 혈압을 못 이겨 터지면 뇌출혈이 된다. 또 혈전으로 심장혈관(관상동맥)이 좁아진 상태가 협심증, 좁아지다 완전히 막힌 것이 바로 심근경색·심장마비다. 이들 질환 모두 돌연사나 마비 등 심각한 장애로 이어진다.

기온 변화가 심·뇌혈관 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는 다양하다. 우선 벌어지는 일교차만으로도 혈관 건강은 위협 받는다. 한국자료분석학회지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1993~2012년 서울지역 65세 이상 사망자 수를 분석한 결과 일교차가 1도 차이 날수록 허혈성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남성은 1.5%, 여성은 1.7%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뇌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남성의 경우 1.6%, 여성은 1% 높아졌다. 연구진은 “일교차가 커지면 사망자 수는 이에 따라 증가하는 선형관계를 보였다”며 “높고 낮은 기온 자체보다 일교차 같은 기온 변화가 건강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노인의 경우 겨울보다 오히려 가을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쌀쌀한 날씨도 큰 위험 요소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병원 임상의학연구소 스테판 에이지월 박사가 이탈리아·독일·영국·노르웨이·스웨덴에서 실시된 총 228만명의 성인(평균 연령 49.7~71.7세)을 대상으로 한 5개의 연구를 분석한 결과 기온이 10도 떨어지면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19%,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은 22%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 평균기온과 심혈관 질환 사망률의 관계를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대만의 리탄 양 박사가 2008~2010년 대만의 사망데이터 중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일 평균기온과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반비례 관계를 보이는데 이런 상관관계는 12.91도와 26.36도 사이에서만 관찰됐다. 즉 일 평균기온이 이 범위에 있는 날씨에는 기온이 낮아질수록 심혈관 질환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특히 양 박사는 일 평균기온 변화가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4~6일이 소요된다는 점도 밝혔다. 기상청에 따르면 공교롭게도 최근 우리나라 일 평균기온은 서울 기준 15.2도에서 16.6도 사이다. 가장 따듯한 제주도의 일 평균기온조차 17.2도에서 19.8도로 일 평균기온과 심혈관 질환 사망률의 반비례 관계가 성립하는 범위에 해당한다.

수면무호흡증, 뇌졸중 위험 더 커

이런 기온 변화에 특히 주의해야 할 사람이 있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3대 혈관 질환 중 한 개 이상 앓고 있거나 심·뇌혈관 질환을 앓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 심·뇌혈관 질환 가족력이 있는 사람, 흡연자, 65세 이상 노인 등이다. 스트레스가 많거나 수면이 부족한 사람도 취약하다. 노화나 질환, 생활습관으로 인해 혈관 상태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노인이라면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수면무호흡증은 수면 중 10초 이상 숨을 쉬지 않는 상태가 1시간에 5회 이상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65세 이상이면서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경우 뇌졸중 위험도가 최대 4.7배 높아진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있다.

이들 고위험군에 속한다면 예방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질병관리청은 ‘심뇌혈관 질환 예방과 관리를 위한 9대 생활 수칙’을 제시하고 있다. ▶담배는 반드시 끊는다 ▶술은 하루에 한두 잔 이하로 줄인다 ▶음식은 싱겁게 골고루 먹고, 채소와 생선을 충분히 섭취한다 ▶가능한 한 매일 30분 이상 적절한 운동을 한다 ▶적정 체중과 허리둘레를 유지한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한다 ▶정기적으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을 측정한다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을 꾸준히 치료한다 ▶뇌졸중, 심근경색증의 응급 증상을 숙지하고 발생 즉시 병원에 간다 등이다. 간단해 보이는 수칙이지만 해당 항목을 모두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 예방수칙을 꾸준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심·뇌혈관 질환 위험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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