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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길거리 행상경제 중시"…美국무·日관방·서구언론 애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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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리커창 총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회의 폐막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2020년 리커창 총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회의 폐막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의 오랜 2인자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이 27일 알려지면서 각국은 조의를 표명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왕이(王毅)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하면서 그의 사망 소식에 애도를 표했다고 미 국무부가 밝혔다.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일본 관방장관도 27일 기자들과 만나 “리 전 총리의 명복을 빌며 애도의 뜻을 전한다”면서 “그는 2018년 5월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때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 등 일·중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밝혔다.

맬컴 턴불 전 호주 총리는 X(옛 트위터)에 애도 글을 올리면서 “그는 공식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당면한 문제에 솔직하고 사려 깊게 참여하는 매력적이고 건설적인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 중국 유럽 상공회의소는 성명을 내고 “외국 기업들의 중요한 대화 창구였던 리 전 총리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그는 중국 경제의 개혁·개방에 방점을 둔 실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물이었다”면서 “리 전 총리는 항상 중국에서 활동하는 유럽 기업들의 우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밝혔다.

외신들도 리커창의 삶과 죽음을 비중 있게 전했다. 영국 BBC는 중국 국영 매체를 인용해 “숙련된 경제 학자이자 실용 노선을 추구했던 리커창이 68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면서 “그는 권력 기반 없이 중국의 요직에 오른 인물로, 한때 주석 후보로 거론됐다”고 묘사했다. 매체는 특히 “리커창은 임기 막바지에 이르러 중국 지도부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충성파 그룹에 속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최고위직 관료였다”고 짚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리커창은 마오쩌둥 세대가 정치에서 물러날 때쯤 등장한 고학력 중국 지도자 세대의 전형이었다”면서 “총리로서 그는 민간 기업에 은행 대출, 토지 등에 관해 보다 공정한 경쟁을 약속했지만, 강경파 최고 지도자 시진핑의 그늘에 머무르는 데 그쳤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실용적인 기술 관료이자 자유 시장 옹호자였던 리커창은 시진핑에 대한 잠재적 균형추로 여겨졌지만, 궁극적으로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고 평했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이루지 못한 야망을 간직했던 총리”라고 묘사했다.

민간 경제를 중시했던 리커창이 중국의 국가 지표보다 민간 지표를 더 신뢰했다는 일화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의 외교 전문에는 당시 랴오닝성 공산당 서기 시절 리 전 총리가 “중국의 공식 국내총생산(GDP) 통계는 인위적”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대신 그는 전기 소비량이나 철도 화물량과 같은 산업 데이터를 더 중시했다고 한다. 웬티 성 호주국립대 정치학과 교수는 “리 전 총리는 ‘길거리 행상 경제’를 옹호해왔다”면서 “그가 풀뿌리 하층민의 곤경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한 지도자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미 뉴욕 기반 대중국 위험 평가 업체인 사이노인사이더는 “리커창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중국 내 새로운 반(反)시진핑과 관련한 루머를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는 중국 공산당 엘리트 내 파벌 투쟁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WSJ은 “과거 중국 고위 관리들의 죽음은 대중의 애도와 현 지도부에 대한 시위를 일으킨 전례가 있다”면서 “1989년 톈안먼 시위는 그해 4월 후야오방(胡耀邦) 전 당 총서기의 서거를 애도하는 모임에서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닐 토마스 미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중국분석센터 연구원은 “시 주석이 당의 전통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리커창에 대한 공개 애도를 허용할 수는 있지만, 이를 이용해 자신의 지도력에 반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시 주석은 이미 리커창의 정치 네트워크를 무력화하고 자신을 충성스러운 지지자들로 채웠기 때문에, 이번 일로 그의 권력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지난 2020년 5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CPPCC)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오른쪽). AFP=연합뉴스

지난 2020년 5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CPPCC)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오른쪽). AFP=연합뉴스

앞서 영국 가디언은 올해 3월 리커창이 총리직에서 물러났을 때 그의 공과를 상세히 조명한 적이 있다. 매체는 리커창에 대해 “총리직으로 집권하는 10년 동안 미국과의 무역 마찰, 코로나19 유행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중국을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이끌었음에도, 당내 ‘붉은(중국 공산당을 상징) 귀족’인 시진핑에게 밀려난 인물”로 평가했다. 영국 런던대 스티브 창 중국연구소장은 가디언에 “리커창은 의도적, 공개적으로 굴욕적인 방식으로 시진핑에 의해 배제됐으며, 그가 큰 영향력을 미칠 기회가 없었다”고 평했다.

리커창이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천 다오인 전 상하이 정법대 교수는 “리커창은 1949년 중국 공산당 집권 이후 최약체 총리였다”면서 “중국의 내각인 국무원의 권한을 당으로 이양하려는 시 주석의 시도를 막지 못함으로써 1978년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 개방 유산을 이어가는 데 용기를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우궈광 미 스탠퍼드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도 WP에 “리커창은 시진핑을 상대할 힘이 있었지만, 불만이 있어도 시진핑을 직접 반대하거나 도전하는 어떤 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수많은 공산당 간부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그의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런던대의 창 소장은 “리커창이 사라진 중국 정치는 곧 집단적 리더십의 종말을 의미한다”면서 “이제부터는 보스(시주석)를 어떻게 하면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지에 따라 중국 엘리트 정치가 좌우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호주 싱크탱크 로이연구소의 리차드 맥그리거 동아시아 선임연구원은 NYT에 “리커창은 일각의 시각처럼 ‘지나간 개혁의 상징’이 아니다”면서 “리커창 같은 개혁가들이 소외되고 권한을 박탈 당하고 있는 시진핑 시대의 상징 그 자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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