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치아 210개 나왔다…"안산 선감학원 집단 암매장은 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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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찾아줘서 미안해. 네가 없어도 나 자주 올 거야. 이제 편히 쉬어. 나도 이제 네 생각 조금 덜하니까….”

선감학원 피해자 이모(63)씨는 경기도 안산 선감도의 암매장지에서 구덩이를 어루만지며 오열했다. 25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선감학원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 자리에서다.

25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선감학원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열린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에서 선감학원 피해자 이모(63)씨가 친구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서윤 기자

25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선감학원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열린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에서 선감학원 피해자 이모(63)씨가 친구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서윤 기자

이씨는 1970년 당시 10살 때부터 5년간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피해자다. 이씨는 이날 구덩이에서 발견된 쇠붙이를 보자마자 50여년 전 친구가 쓰던 물건임을 확신하고 눈물을 흘렸다. 굶주릴 때 바닷가에서 주워온 굴을 까먹기 위해 쇠를 갈아 만든 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내가 밤마다 구타와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고 ‘내가 너희 집에 가서 부모님을 데려올게’라며 탈출한 친구가 3일 뒤 죽은 채로 바다에 떠밀려 왔다”며 “그 친구를 내가 묻었는데 너무 어렸을 때라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치아, 단추 발견…“최소 150구” 암매장 확인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가 열린 25일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 유해 매장지에서 희생자들의 치아와 단추 등 유품들이 공개됐다. 장서윤 기자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가 열린 25일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 유해 매장지에서 희생자들의 치아와 단추 등 유품들이 공개됐다. 장서윤 기자

진실화해위는 지난달 21일부터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의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분묘 40여기를 2차 시굴(시범 발굴)한 결과, 당시 원생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 210개와 단추 등 유품 27개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아동 집단 암매장이 사실로 드러난 것”(진실화해위)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1982년까지 대규모 아동 인권 유린이 자행된 선감학원 근처 암매장지로, 탈출하다 익사하거나 영양실조 등으로 죽은 아이들이 묻힌 곳이다. 암매장 이후 최소 40년이 흘러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동 허리띠로 추정되는 16인치 직물 끈과 굴을 까먹을 때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쇠붙이 등이 발견됐다.

시굴 작업을 맡은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우종윤 원장은 “약 2400㎡ 면적의 이 산에 최소 유해 150여 구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며 “치아 유해 감식 결과 12∼15세의 나이로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시굴된 분묘 대부분은 길이가 110∼150㎝, 깊이도 50㎝ 미만이었다. 가장 작은 분묘(92호)의 길이는 85㎝에 불과했다. 유 원장은 몸집이 작은 아동들이 가매장 형태로 땅에 묻힌 증거라고 설명하면서 “무엇 때문에 꿈을 키워가는 시기에 어린아이들의 삶이 여기서 멈췄을까”라고 되뇌었다.

여전히 불 끄고 잠 못 드는 피해자들  

1970년 선감학원 아동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1970년 선감학원 아동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42년 ‘태평양전쟁 전사’를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설립한 아동 강제수용소로, 해방 후에도 경기도가 1982년까지 운영했다. ‘부랑아 교화’라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원생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거나 폭력 등 인권 침해를 당했다. 다수가 구타와 영양실조로 사망했고, 섬에서 탈출을 시도한 834명 중 상당수는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때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자 이씨는 “1972년에 탈출을 시도하다 발각돼서 일주일 동안 물도 못 마시고 해도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 갇혀 있었다”라며 “어려서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불을 켜지 않으면 잘 수가 없다. 대변도 보지 못해 장갑을 갖고 다니며 변을 파내야 하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저는 부랑아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사과를 받으면 (정신과) 약을 당장 끊을 수는 없겠지만, 마음 한켠의 응어리는 풀 수 있을 것 같다”라며 흐느꼈다.

경기도가 제출한 원아 대장에 따르면 선감학원 전체 수용 아동 수는 총 4689명이었으나, 1982년 7월 29일 경기도 부녀아동과가 작성한 자료에는 5759명으로 나왔다. 진실화해위는 원아 대장을 확보해 지난해 10월 진실규명 신청인 166명뿐 아니라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선감학원 아동들의 공동묘지. 경기도 안산 단원구 선감동에 있는 섬 선감도에 위치해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선감학원 아동들의 공동묘지. 경기도 안산 단원구 선감동에 있는 섬 선감도에 위치해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아직 80% 남았지만…진실화해위 “더 발굴 못 해”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 모습.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 모습.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2기 진실화해위의 발굴 작업은 여기서 끝이 난다. 진실화해위가 한시적 기구이기 때문이다. 발굴 작업의 권한은 경기도와 정부에 남아있지만, 진실화해위는 경기도와 행정안전부가 진실화해위의 유해 발굴 권고를 1년이 지나도록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는 지난 3월 유해 발굴은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사업 불참을 통보했다.

피해자들은 갈수록 유해의 풍화·부식이 심해지는 데다, 암매장지에 묻힌 아동들이 발굴을 요구할 수 있는 유족이 없는 무연고자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김영배 선감학원 아동 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그나마 흔적을 알 수 있는 유해인 치아의 흔적이 갈수록 풍화되고 부식이 심해지는 것을 직접 확인하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국가와 지방정부가 신속히 나서서 선감학원 일대의 전면적 유해 발굴에 나서주시길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진실화해위는 시굴 결과를 반영해 오는 12월 2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고 경기도에 전면적 발굴을 재차 권고할 계획이다. 진실화해위 김진희 조사관은 “2차 진실규명 때는 왜 아동들이 이 섬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는지, 누가 암매장을 지휘하거나 명령했는지 책임자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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