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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형 ‘제시카법’, 위헌 논란·주민 갈등 해소가 관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4일 오후 경기 과천 법무부에서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한국형 제시카법)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4일 오후 경기 과천 법무부에서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한국형 제시카법)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소재 불명 성범죄자만 168명, 거주 제한 필요성 제기

약물 치료자 재범률 1.3%로 낮아, 진단 의무화는 적절

법무부가 어제 ‘한국형 제시카법’(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입법 예고했다.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국가 등이 지정한 시설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조두순처럼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범이나 3회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자 등이 대상이다. 아울러 이들에 대한 약물치료 진단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한다.

법무부가 이 법안을 마련한 이유는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자의 25.6%가 13세 미만이며, 재범률이 12.9%에 달하는 등 성폭력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는 출소한 성범죄자가 임의로 거주지를 택할 수 있어 주민들의 불안이 크다.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거나 거주지가 일정치 않아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도 많다. 2021년엔 30대 성범죄자가 경찰에 신고한 주소지와 다른 곳에 거주하며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다. 거주지 등 신상정보 등록 의무를 위반해 형사 입건된 성범죄자만 지난해 5458명이며, 이 중 168명은 소재 파악조차 안 된다.

법무부는 거주 제한이 필요한 고위험 성범죄자가 지난해 말 기준 325명이고, 내년에만 59명이 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한 국가의 관리·감독 강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약물치료를 받은 성범죄자의 재범률(1.3%)이 일반 성범죄자(10%)의 8분의 1 수준이란 점에서 약물치료 진단의 의무화도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성범죄자의 거주 제한은 기본권 침해 논란은 물론, 거주지로 지정된 시설 인근 주민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14조는 범죄자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이미 형이 만료된 전과자를 특정 시설에 살도록 강제하면 위헌소송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설 지정도 난관이다. 당초 법무부는 ‘학교 등 600m 이내 거주 금지’와 같은 거리 제한을 검토했으나, 거주지가 수도권 이외 지역으로 집중될 것이란 우려에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정부가 지정할 ‘국가 등이 운영하는 시설’ 역시 인구 밀집이 덜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커 ‘치안 지역 격차’가 생길 수 있다.

설령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을 거주시설로 정한다 해도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오히려 여러 명이 모여 살면 지역사회의 슬럼화 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이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관리는 편하겠지만, 치안 양극화로 인한 주민들의 실(失)이 커질 수 있다. 고위험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고,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법안의 취지엔 공감한다. 그만큼 예상되는 문제점을 미리 따져보고 보완책 마련에 만전을 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