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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는 매일이 어린이날"…재밌는 일만 하고, 숙제 무시했다 [팩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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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23일 오전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 뉴스1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23일 오전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 뉴스1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23일 금융감독원에 소환됐다. 카카오의 정체성 또한, 이날 공개 소환됐다. 견제·헌신·기술의 리더십이 안 보이는 상태로 포토라인 앞에 섰다.

금감원 조사의 초점은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엔터)를 인수하며 시세 조종 등 위법 행위를 했느냐는 것. 지난 19일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는 이 혐의로 구속됐고 김 창업자 소환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카카오 안팎에서는 “조사 결과를 떠나, 카카오에 근본적 쇄신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견제가 없다…권한만 준 ‘100인의 CEO’

SM엔터 인수전 후폭풍에 대해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법무 리스크를 안일하게 여긴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그 배경에는 인수를 주도한 배재현 총괄에 대한 김 창업자의 무한 신뢰, 그리고 견제 시스템의 부재가 있다는 것.

김 창업자는 “성공한 선배 기업가의 최고 선행은 후배 기업가 양성이며, CEO 100인을 키운다면 성공”(2008년 당시 NHN을 떠나며 한 말)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카카오 경영에서 실행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이어가며, 성장성 높은 사업부문은 분사해 독립경영을 보장하고 상장시켰다. 이는 계열사 CEO들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됐고, 급성장의 동력이 됐다.

그러나 김 창업자가 후배 기업가들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준 동시에 견제·감시 시스템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35세 나이로 카카오 대표에 발탁됐던 임지훈 전 대표는 카카오벤처스와 800억원대 성과급 지급 여부를 두고 소송 중인데, 소송의 핵심은 본인의 성과급 지급을 ‘셀프 승인’ 했느냐다. 2021년 카카오 새 대표로 내정됐던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는 ‘스톡옵션 먹튀’ 논란 등으로 불명예 사퇴했다. 지난 9월에는 김기홍 카카오 재무그룹장이 법인카드로 1억원 어치 게임 아이템을 결제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카카오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자율을 넘어 결재·보고·정보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대형 IT업체 임원은 “인맥에 의한 경영진 선임이 계속 이뤄지다 보니 문제 삼아 바로 잡아야할 일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반복됐다”라고 말했다. 신임만 있고 견제와 긴장이 없으니, 내부 모럴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가 반복됐다는 것.

헌신이 없다…‘문제 해결은 누가?’ 

카카오 내부 사정을 아는 IT업계 한 경영자는 “카카오는 매일이 어린이날 같았다”라고 평가했다. 주어진 권리 속에 흥미로운 업무엔 너도나도 손을 대지만, 회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를 챙기는 이가 드물었다는 것. 그 결과 카카오엔 ‘묵은 난제들’이 쌓였다. 대표적인 게 ‘지네발 계열사’와 지배구조 논란이다.

김범수 창업자는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골목상권 침해 사업에 절대로 진출하지 않겠다”, “안 해야 할 사업을 신속히 정비해 나가겠다”라고 공언했다. 카카오는 지난 8월 카카오헤어샵 철수를 위해 526억원을 투입해 투자자 지분을 되사는 등 노력했다. 그러나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카카오 계열사는 현재 144개로, 2년 전(105개)보다 도리어 37% 늘었다.

김 창업자가 지분 100%를 보유한 케이큐브홀딩스(KCH)의 ‘편법 지주사’ 논란도 16년 묵은 숙제다. 2007년 설립된 KCH는 김 창업자(13.29%)에 이은 카카오 2대 주주(10.41%)다. 문제는 KCH의 정관상 사업 목적에 ‘금융업’이 있으며, 주 수입원도 금융(투자) 수익이라는 것.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금융사인 KCH가 비금융계열사(카카오, 카카오게임즈)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해 공정거래법(금산분리 규정)을 위반했다며 과징금 부과와 고발 조치를 했고, 검찰 수사와 행정재판이 각각 진행 중이다. 지주회사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지만, KCH는 카카오의 최다출자자가 아니므로 법령상 지주회사가 될 수 없다.

이렇게 그룹의 지배구조를 흔들 난제가 있는데도, 계열사를 한데 모을 구심점은 부족했다. 카카오 사정에 정통한 IT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계열사 CEO들이 김 창업자와 개별적 인연은 있지만 한자리에 모여 회사의 중대 과제를 논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공통의 목적 없이 계열사의 수많은 가지가 각자 뻗어나가기만 했다는 것. 다수의 계열사와 지배구조 문제는 결국 카카오의 아킬레스 건이 됐다.

기술 리더가 없다…AI 지휘관은 어디에?

‘투자 키맨(key man·핵심인물)’인 배재현 총괄대표의 구속보다 더 큰 위기는 ‘테크 키맨’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2022년부터 CXO 체제를 없애고 기술·디자인·광고사업·재무·경영지원·전략기획 그룹장 혹은 부문장이 C레벨 역할을 해오고 있다. 기술은 이채영 카카오 기술부문장과 고우찬 인프라부문장이 맡고 있으나 최고기술책임자(CTO) 직책은 따로 없다. 남궁훈 전 카카오 공동대표가 사내에서 ‘기술도 알고 창업자와 직통 소통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인물로 신망을 받았으나, 지난해 데이터센터 화재 여파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말 오픈AI가 ‘챗GPT’를 내놓은 후 전 세계 테크 업계는 AI 전쟁에 돌입했지만, 카카오가 하반기 내놓겠다던 초거대 언어모델 ‘코(Ko)-GPT’는 소식이 없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은 자사 클라우드 사업에 AI를 결합한 각종 기업용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카카카오의 클라우드 사업을 맡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2019년 분사)는 올해 조직개편으로 200명 이상 감원했고, 이달부터 희망퇴직을 추가로 받고 있다. 그간 사업 실패로 적자가 누적된 탓이다. 노조는 “경영진이 무리하게 분사를 결정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 SM엔터테인먼트 인수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 SM엔터테인먼트 인수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CA 협의체, 카카오 해결사 될까

카카오 안팎에선 계열사 조율기구인 CA협의체(옛 공동체 얼라인먼트센터)를 중심으로 비상 경영 체제로 돌입할 가능성을 점친다. 다만 금감원 조사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면서 내부에서도 혼란을 겪는 모양새다. 우선 CA협의체 구성원인 ‘4명의 총괄(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 권대열 카카오 정책센터장, 배재현 투자총괄대표)’ 가운데 배 총괄대표 외 나머지 3인이 CA협의체 역할을 정리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벤처 1세대’ 주역이자 김범수 창업가와 인연이 깊은 김정호 대표가 조직 개편의 조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 내부 관계자는 “아직 비상경영이나 조직 개편 등에 대해 정해진 게 없다”라며 “컨트롤타워가 계열사를 지나치게 관리하는 것에 대한 내부의 비판적인 시선도 있어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