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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저성장 터널…韓 잠재성장률 올해 1%대, 내년엔 美보다 낮아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처음으로 1%대에 들어설 거란 전망이 나왔다. 하락 추세가 이어져 자칫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 하는 모습.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사상 처음으로 1%대로 떨어졌다는 전망이 나왔다. 연합뉴스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 하는 모습.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사상 처음으로 1%대로 떨어졌다는 전망이 나왔다. 연합뉴스

23일 한국은행이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20년 한국 포함 주요국 연도별 국내총생산(GDP) 갭(gap)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을 1.9%로 추정했다. 잠재성장률은 쉽게 말해 한 나라 경제의 기초 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노동·자본 등을 최대한 투입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뜻한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경기 부양책을 써서 성장률을 2% 이상으로 키울 수는 있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같은 후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OECD가 추정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에 못 미치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내년에는 더 낮아져 1.7%까지 떨어질 거 라는 게 OECD의 예상이다. 이 전망대로면 내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보다 낮다. OECD의 미국 잠재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1.8%, 내년 1.9%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 경제는 최근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생산성 혁신 등으로 그간의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라며 “한국은 덩치가 훨씬 큰 미국 경제보다도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수치로 나타났다”고 짚었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 7개국(G7)에 비해선 한국의 잠재성장률 전망치가 아직 높다. 하지만 추세적으로 보면 다른 G7 국가에도 잠재성장률 역전을 허용할 여지가 있다.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경제활동 인구가 늘고 있는 캐나다의 경우 전망치가 2021년 1.2%에서 2024년 1.6%로 올랐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반면 한국은 잠재성장률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한은의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보면 지난 2001~2005년 잠재성장률은 연평균 5~5.2%에서 2006~2010년에는 4.1~4.2%, 2011~2015년에는 3.1~3.2%, 2016~2020년 2.5~2.7%로 낮아졌다. 2001년 이후 5년이 지날 때마다 앞자리가 바뀌고 있다. 2021~2022년은 2% 내외인데, 이런 추세면 한은이 발표하는 올해 이후 잠재성장률 추정치도 1%대로 내려갈 수 있다.

하락의 원인은 우선 가파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가 꼽힌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잠재성장률 하락은 이미 예견된 것인데, 인구 요인이 가장 크다”라며 “초저출산 탓에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고, 청년층 고용률도 낮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미국의 경우 인구 측면에서 이민자가 많은 영향으로 젊고 유능한 노동자나 자본과 기술이 있는 ‘브레인’이 유입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구(노동)와 함께 잠재성장률을 좌우하는 다른 요인으로는 자본‧생산성이 있다. 저출산 문제를 단기간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투자가 늘어나고 생산성도 향상돼야 잠재성장률을 키울 수 있는데 한국 경제는 그렇지도 못하다는 게 문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 및 불합리한 정책으로 인해 투자로 인한 자본 증가나 생산성 향상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낮은 잠재성장률의 고착화는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는 수순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나홀로 통화 완화’ 등의 효과로 올해 경제 성장률이 반등세를 보였지만 잠재성장률 하락세는 막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2021년에 8년 연속 0.8%를 기록한 일본 잠재성장률은 올해 0.3%, 내년 0.2%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OECD 추산)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와 같은 잠재성장률 저하 상황이 지속하면 일본과 같은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며 “반도체 이외에 빅데이터, 인공지능(AI)과 같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노력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사회적 합의에 따른 구조 개혁도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회복의 필수 요인으로 꼽힌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노동·자본 이외의 생산성 향상 요인은 비단 기술 진보나 산업 구조조정과 같은 경제적인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라며 “정치권이 정쟁을 멈추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연금‧노동‧교육 분야 등의 개혁을 이뤄내는 것이 한국 경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2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성장에서 어떻게 탈출하는지는 다 알고 있다. 여성ㆍ해외 노동자 활용 등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하면 2% 이상으로 갈 수 있다”면서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문제다. 그 선택은 국민과 정치권에 달려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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