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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왜곡' 여론조사 퇴출…與보다 2배 센 해법 나왔다 [Vie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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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선거 여론조사 전화면접조사 응답률을 최소 10% 이상 넘기겠다.”

한국갤럽·한국리서치 등 34개 국내 여론조사 업체가 회원인 한국조사협회(KORA)가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22일 발표한 일종의 ‘자정 선언’의 내용이다. 값싼 정치선거 여론조사가 남발되면서 응답자(국민)에겐 외면을 받고, 객관성·신뢰성을 깎아먹는 것은 물론 선거운동 도구로까지 오·남용되는 심각한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권에서 선거 여론조사 난립을 막기 위해 응답률 5% 미만 조사는 공표를 금지하는 선거법 개정안(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안)을 논의 중인 상황에서 시장 자체적으로 두 배 높은 기준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소수점 이하 조사 결과는 더는 쓰지 않고 반올림해 정수로만 표기하기로도 했다. “0.5%포인트 차로 앞섰다” “전주 대비 0.3%포인트 올랐다” 등 통계학적으론 별 의미 없는 오차범위 안의 변화인데도 정확한 수치인 듯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해석은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상당한 진전이다.

조사협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전국 단위 조사에선 휴대전화 가상번호(통신3사 안심번호)를 이용할 경우 최소 10% 이상, 전화번호 임의걸기(RDD) 방식 조사에선 최소 7% 이상 응답률을 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치선거 전화여론조사 기준을 마련해 이를 준수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조사협회에 따르면 응답률 기준 외에도 ▶부재중·통화중인 대상자에게도 최소 3회 이상 재접촉해 최초 조사 대상자의 응답을 받도록 노력하고 ▶조사 결과 소수점 이하는 반올림한 정수로 제시해 결과 해석에 과도한 정확성을 부여하는 것을 경계하며 ▶전체 표본오차, 지역·연령 등의 하위 변수 표본오차를 고려해 확인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주관적 추정에 기반한 해석을 삼간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조일상(메트릭스 대표) 조사협회 회장은 “모든 회원사가 준수를 약속한 전화여론조사 기준이 정치선거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언론과 정치권도 동참하고 협조해 달라”고 호소했다.

조사협회 회원사들은 한발 더 나아가 “회원사는 조사원에 의한 전화면접조사만 시행하며 ARS(자동응답조사)는 물론 전화면접조사와 ARS를 혼용하지 않는다”고도 천명했다. “불특정 다수에 대량 전송해 녹음 또는 기계음을 통해 조사하는 ARS는 과학적인 조사방법이 아니며, 여론조사뿐 아니라 통신 환경마저 훼손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하면서다.

“여야, 여론조사 선거운동 악용 등 근본대책 머리 맞대야”   

사실 그간 조사기관·방법론에 따른 차이가 관찰돼 왔다. 최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와 여야 정당 지지도가 최대 10%포인트 이상 들쑥날쑥했다. 윤 대통령 지지도는 한국갤럽(17~19일) 조사에서 30%, 여론조사 공정(16~17일) 조사에선 37%로 차이가 났다. 정당 지지도는 여론조사 꽃(13~14일, 37.1% vs 54.2%)과 공정(40% vs 39%)에서 정반대 결과도 나왔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전화조사를 하는 진영에선 ARS 조사에 강한 불신을 한다. “표본을 무한정 대체하는 방식으로 정치 고관여층만 조사한다는 건 과학적 조사가 아니다”(김춘석 한국리서치 사회여론조사 부문장)란 것이다. 조사협회에서 ARS조사 업체를 퇴출시키기도 했다. 실제 ARS 조사 중 응답률이 1%가 안 되는 것도 수두룩하다.

문제는 전화면접원조사가 수천만원이 드는 데 비해 ARS조사는 수백만원이면 가능하다는 점이다. 중앙선관위 산하 중앙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이 90개 가까이 되는데 대부분이 ARS 조사를 하는 까닭이다. 당장 이택수(한국정치조사협회 회장) 리얼미터 대표는 “22대 총선 시장을 놓고 중소형 ARS 여론조사를 퇴출하려는 대형업체의 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국 등에서도 여론조사 피로감에 응답률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법정 응답률’을 못 박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당장 응답자에게 온라인 상품권 등 인센티브를 지급해 응답률을 높이려면 조사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정확한 결과가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조사’를 원하는 것도 상황을 나쁘게 한다.

한국통계학회장을 지낸 김영원 숙명여대 교수는 앞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정 수준 이상 접촉률·응답률을 만족하지 못하면 공표를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할 경우 허술한 조사를 많이 퇴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미국이나 일본·영국 등 소수점 아래까지 쓰는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고도 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장인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여론조사를 악용하는 등 여론조사의 정치화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 선거여론조사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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