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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1명 키우는데 온 마을 필요? 진짜 이렇게 하니 '출산율 3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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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카야마현 나기마을(奈義町·나기초)의 나기 차일드 홈은 일종의 육아 공동 구역이다. 엄마나 아빠가 자녀를 데리고 이곳에 오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린다. 부모끼리는 육아 이야기를 공유한다. 지난달 15일 나기 차일드 홈에서 만난 사다모리 아야카(36)는 1년8개월 된 쌍둥이 딸과 함께였다. 쌍둥이는 그의 셋째와 넷째다.

15일 오전 쌍둥이 자녀를 데리고 일본 오카야마현 나기마을의 나기 차일드홈을 방문한 사다모리 아야카(36)가 일을 하기 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웃주민인 시바타 마키코(57)에게 돌봄을 맡기고 일을 하러 갔다. 나기마을=정진호 기자

15일 오전 쌍둥이 자녀를 데리고 일본 오카야마현 나기마을의 나기 차일드홈을 방문한 사다모리 아야카(36)가 일을 하기 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웃주민인 시바타 마키코(57)에게 돌봄을 맡기고 일을 하러 갔다. 나기마을=정진호 기자

사다모리는 오후 2시가 되자 일하러 가야 한다며 아이들을 두고 떠났다. 그를 대신해 아이를 보러 온 건 나기마을 토박이인 시바타 마키코(57). 시바타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있을 때면 이곳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 그는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자주 오다 보니 아이들 대부분이 손자·손녀처럼 친숙하다”고 말했다. 나기 차일드 홈은 선택사항으로, 원한다면 언제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도 있다.

3명 육박한 합계출산율의 소도시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2021년 기준 인구 5500명인 나기마을의 합계출산율은 2.68명. 2019년(2.95명)보다 소폭 하락했으나 여전히 일본 지자체 중 가장 높은 편이다. 나기마을의 출산율이 처음부터 높았던 건 아니다. 2005년엔 1.41명으로 2.95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2012년 나기마을은 “육아를 지원한다는 정책 목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내용의 육아 응원 선언을 발표했다. 지자체는 육아를 돕고, 마을 주민은 아이가 자라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나이지리아 속담은 현실이 됐다.

지나달 15일 일본 나기마을 나기차일드홈에서 열리고 있는 바자회. 마을 주민들이 육아 관련 용품을 하나둘씩 내놓았다. 아이 옷을 50~130엔(450~1270원)에 살 수 있다. 나기마을=정진호 기자

지나달 15일 일본 나기마을 나기차일드홈에서 열리고 있는 바자회. 마을 주민들이 육아 관련 용품을 하나둘씩 내놓았다. 아이 옷을 50~130엔(450~1270원)에 살 수 있다. 나기마을=정진호 기자

나기마을에서 출산·육아 정책을 담당하는 타카마사 마츠히타는 “출산 때 축하금 10만엔, 고등학교까지 의료비 공짜, 고등학생에게 연간 13만5000엔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이 있지만 가장 차별화된 건 부모가 아닌 지역 전체가 육아를 함께 한다는 것”이라며 “저출산 대책에 마을 예산 상당수가 들어가지만 고령층도 어린이가 있어야 마을이 유지된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옆 동네와 연결되는 버스만 해도 아이들이 없다면 당장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식부터 바꾸자” 일본의 실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 6월 발표한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엔 사회 전체의 의식 개혁이 핵심 과제로 포함됐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의식 개혁 차원에서 어린이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했다. 육아수당 등 양육 지원을 강화한 건 한국과 일본이 흡사하지만, 일본 정부는 돈뿐 아니라 의식 변화에도 무게를 뒀다.

어린이 패스트트랙은 국립박물관·공항·관공서 등을 이용할 때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임산부는 기존 대기자보다 먼저 입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도쿄 국립박물관 관계자는 “어린이날이나 연휴 기간에는 어린이 동반 가족을 위한 매표소를 따로 운영하고, 현장 상황에 따라 어린이 패스트트랙을 시행한다”며 “어린이 동반 가족만 입장할 수 있는 날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저출산 극복 절박함에 컨트롤타워 설치

박물관뿐 아니라 운전면허 발급소 등 관공서나 공항 출입국장에도 어린이 패스트트랙을 운영한다. 도쿄를 시작으로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오카야마현 타카하시·신미시 등 지자체에서의 도입도 늘고 있다. 민간 호응도 나온다. 도쿄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풋살팀 페스카도라 마치다는 지난 5월 개막전 홈경기부터 미취학 아동과 그 동반자를 대상으로 패스트트랙을 운영한다.

나카하라 시게히토 일본 어린이가정청 저출산대책기획관이 지난달 13일 일본의 저출산 대책과 한국의 상황에 대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정진호 기자

나카하라 시게히토 일본 어린이가정청 저출산대책기획관이 지난달 13일 일본의 저출산 대책과 한국의 상황에 대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정진호 기자

지난 4월 신설된 어린이가정청의 나카하라 시게히토 저출산대책기획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가 이웃의 도움을 받는다는 느끼게 하고자 했다”며 “어린이에 친절한 사회를 우선 만들고 결혼부터 출산·육아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린이가정청은 기존 내각부와 후생노동성의 저출산·어린이 정책을 통합한 총리 직속 저출산 대응 컨트롤타워다. 한국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달리 다른 부처에 정책 권고권을 행사할 수 있고, 자체 사업 예산을 편성한다.

전철역 앞엔 ‘어린이집 정거장’

일본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는 의식 때문이다. 도쿄역에서 약 30㎞ 떨어진 지바(千葉)현 나가레야마(流山)시는 송영 보육스테이션을 운영한다. 일종의 어린이집 정류장이다. 출근하면서 이곳에 아이를 맡기면 5대의 셔틀버스가 보육원에 아이들을 내려준다. 퇴근시간 전엔 보육원을 돌면서 아이들을 다시 태워 온다. 송영 보육스테이션은 도쿄로 가는 전철역 2곳에 붙어 있다.

지난달 13일 오후 4시40분 일본 나가레야마시 전철역 앞에 있는 송영 보육스테이션에 버스가 들어왔다. 인근 보육원을 돌면서 아이들을 태운 5대의 버스는 이곳에 모인다. 나가레야마=정진호 기자

지난달 13일 오후 4시40분 일본 나가레야마시 전철역 앞에 있는 송영 보육스테이션에 버스가 들어왔다. 인근 보육원을 돌면서 아이들을 태운 5대의 버스는 이곳에 모인다. 나가레야마=정진호 기자

지난달 13일 오후 7시 하다카(39)는 퇴근 후 5살 딸을 데리러 송영 보육스테이션에 들렀다. 하다카의 집은 역 근처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다. 자리가 있는 보육원은 더 떨어져 있다. 그의 딸은 보육원이 문을 닫는 5시부터 7시까지 송영 보육스테이션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다카는 “일이 늦게 끝나다 보니 7시 전후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그때까지 역 바로 앞 유치원에서 맡아주는 기분”이라며 “아내도 도쿄로 출퇴근하다 보니 거의 매일 이용하며 번갈아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온다”고 말했다.

야근하는 부모를 위해 송영 보육스테이션은 오후 9시까지 아이를 봐준다. 매번 보육원이 마친 후 이곳으로 모이다 보니 다른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끼리도 친해졌다. 1달 이용료는 2000엔(1만8000원), 하루만 이용할 수도 있는데 100엔(900원)만 내면 된다. 이곳을 운영하는 다케다 에마 원장은 “시내의 거점 전철역 2곳의 송영 보육스테이션이 나가레야마시 전체 보육원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일본 시즈오카대 후지모토 켄타로 교수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다양한 저출산 대책을 시행해왔지만 저출산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아이가 있는 가족을 지원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며 “심정적으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치열한 경쟁과 이로 인한 사교육비 부담을 해소해야 한다는 게 특수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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