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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장관들 낮은 자세’ 주문…여당 ‘정쟁 현수막’ 철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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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호 02면

‘로키’로 가는 용산

국민의힘이 전국에 설치한 ‘정쟁 현수막’을 철거하고 이와 유사한 목적의 당내 태스크포스(TF)도 대폭 정리하기로 했다.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서강대교 남단 사거리에서 당 관계자들이 ‘정쟁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이 전국에 설치한 ‘정쟁 현수막’을 철거하고 이와 유사한 목적의 당내 태스크포스(TF)도 대폭 정리하기로 했다.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서강대교 남단 사거리에서 당 관계자들이 ‘정쟁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식 석상에서 발언할 때도 이념보다는 민생에 방점을 두는가 하면 참모들에게도 변화와 소통을 강조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여권이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대통령실부터 ‘로키’ 행보를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는 게 참모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앞으로 매주 민생 현안과 관련한 일정을 가지며 국민과 직접 소통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 참모 회의나 당정 모임 등에서 “국무위원이 좀 더 몸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제언에 공감을 나타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20일 “국무위원들이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 질의에 답할 때도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낮은 자세로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고 윤 대통령도 이에 공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회에선 국무위원과 야당 의원들이 감정 섞인 설전을 벌이는 모습이 끊이질 않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박범계·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법사위가 열릴 때마다 날 선 발언을 주고받았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다른 국무위원들도 대정부질문 때 야당 의원들과 대립하는 장면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양쪽 지지층은 속이 시원해하지만 중도층은 고개를 돌리게 되는 상황이 지속되는 데 대해 여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윤 대통령도 문제의식을 갖고 변화를 주문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더 나아가 향후 장관 후보자를 선택할 때도 ‘국민을 대하는 자세’를 중요한 자질 중 하나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능력뿐 아니라 겸손한 태도로 임할 수 있는 인물을 찾겠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이 주문한 ‘낮은 자세’는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여당도 증원 숫자를 미리 정해놓고 밀어붙이기보다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먼저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거 참패 뒤 여론의 흐름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변화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갤럽이 지난 17~19일 조사해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0%로 전주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지난 4월 둘째 주 27%로 올해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부정 평가는 전주에 비해 3%포인트 오른 61%를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이 책임을 묻는 건 결국 집권 여당과 정부”라며 “앞으로 정쟁은 최대한 멀리하고 민생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이 같은 행보에 여당인 국민의힘도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당장 20일엔 서강대교 남단 사거리에 2주간 걸려 있던 ‘대법원장 임명 부결, 이재명 방탄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적힌 현수막부터 철거했다.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쟁을 유발하는 현수막을 정리하기로 결정한 지 하루 만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젠 ‘정쟁 현수막’이 아닌 ‘정책 현수막’이 걸리게 될 것”이라며 “당에서 지역에 내려보내는 현수막도 민생과 관련한 내용으로 모두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에는 국민 대부분이 정치 현수막을 ‘공해’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난하는 문구만 집중적으로 내걸다 보니 집권 여당 입장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됐다는 판단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반사이익만 노리며 이 대표 공격에만 치중하다 정작 민생을 놓쳤다”는 반성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국정감사 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과도한 현수막 게시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지도부의 메시지도 상대 당보다 국민을 보고 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정쟁 현수막 철거에 나서자 민주당도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고위원회의 비공개회의에서도 앞으로 전국 시·도당별로 현수막을 내걸 때 당이 주력하는 정책 분야가 집중 홍보되도록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도 “국민의힘이 논란을 빚은 현수막을 철거하기로 한 방침을 환영한다”며 “현수막의 혐오 문구가 더 이상 유권자들을 짜증 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단 텔레그램방에서도 “강성 지지자면 보면 안 된다”며 현수막 문구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대화방 참석자들에 따르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영환 의원은 국민의힘 현수막 철거 기사를 공유하며 “중도층의 시선에서 우리의 태도를 생각해야 한다. 당 지도부도 강한 지지 세력뿐 아니라 다수 국민의 눈높이를 먼저 헤아려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도 “여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태세 전환에 나서는데 우리도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며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야는 그동안 상대 당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과 조롱이 담긴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내걸면서 “여야 정당이 오히려 정치 혐오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난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며 ‘이완용의 부활인가’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국민의힘도 지난 5월 무소속 김남국 의원의 코인 보유 의혹이 불거지자 ‘총체적 남국’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며 공세를 폈다.

현재 국회에는 정당 현수막 난립을 막기 위해 표시 방법과 기간·장소·개수 등을 제한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7건이나 발의돼 있지만 모두 소관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인 임종성 의원은 “민주당의 경우 경기도에서는 지난 8월부터 정쟁 문구 대신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등 정책을 강조하는 현수막을 내걸도록 하고 있다”며 “앞으로 여당에 대한 비판도 정책 위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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