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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이념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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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에디터

김동호 경제에디터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 정부에서 안보 성적도, 경제 성적도 월등히 좋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보는 보수 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 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9·19평양공동선언 5돌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잊히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더니 이게 웬 말인가 싶다. 이보다 더한 정치 관여가 있을까. 더구나 객관적 사실로 보기도 어려운 발언이다.

경제 성과와 관련해 보수와 진보를 나누어서 어느 쪽이 더 좋았다고 단언하는 것 자체가 적절할까. 한국 경제는 보수·진보 정책 위에 대외 변수라는 핵심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성향과 무관하게 글로벌 경제 환경이 순풍이면 호황을 누리고, 지금처럼 역풍이 불면 어떤 정책을 써도 백약이 무효다.

경제 잘했다는 전 대통령 말에 실소
지금은 경기침체 극복에 힘 모을 때
윤 대통령도 탕평책 써야 국민 공감

최근 몇 년만 봐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외 경제 환경이 윤석열 정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호시절이었다. 장기간 초저금리였던 때라서 모든 경제주체가 금리 부담 없이 돈을 쓸 수 있었다.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도 낮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불안도 없었기 때문에 국제유가도 안정세였다. 금리·환율·유가가 한국 경제 환경에 특별히 부담을 주지 않았다.

무역 환경은 어떤가. 그간 자유무역의 덕을 봐 온 한국으로선 미·중 대립이 격화할수록 수출이 어려워진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중국 토종 스마트폰과 자동차가 중국의 안방을 차지하면서 한국 제품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중국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1%도 안 된 지 오래다. 한국 자동차 점유율도 1% 남짓이다. 추세적으로 중국에서 한국 기업의 설 자리는 더 좁아질 수 있다. 유일하게 버티고 있는 반도체 역시 중국의 토종 반도체가 덩치를 키우면서 초격차의 위상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 중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가격·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춘 부동산 대책이 경제를 얼마나 왜곡했는지는 당시 정책 당국자들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소득·고용·부동산과 관련된 통계조작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지경이다. 임기 중 국가채무가 400조원 넘게 불어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짐이 되고 있다.

원조 보수 정권으로 꼽히는 이승만 정부는 시장경제를 채택해 번영의 토대를 만들었고, 박정희 정부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 배고픈 사람이 없게 만들었다. 전두환 정부는 고물가를 잡아 지속 성장의 길을 열었고,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를 통해 한국 기업의 시장을 공산권까지 넓혔다. 이명박 정부는 진보 진영이 반대했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경제 영토를 크게 넓혔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 실패는 규제 부족 탓이라며 온갖 규제를 쏟아부은 문재인 정부 임기 중 서울 아파트값은 두 배로 뛰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부동산이 동면 상태에 가까울 만큼 관리되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국가 부도위기 상황을 잘 관리했고,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 협상을 시작했다. 이 흐름만 봐도 경제는 보수·진보라는 이념보다는 실용이 먼저였다.

안보 역시 좌우를 가를 게 아니다. 문 정부 임기 중 북한은 핵·미사일을 고도화하고 우리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라더니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배우 이영애는 “역대 대통령의 과오는 역사에 남기되, 공을 살펴보며 서로 미워하지 말고 화합하면 좀 더 평안한 나라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고 호소했다. 그의 바람처럼 서로 미워하지 말고 화합해야 경제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지금은 경기 침체 극복에 힘을 모을 때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하듯 윤석열 정부도 이념을 앞세우고 전 정부를 자주 탓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탕평책이 절실하다는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