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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저절로 통하는 정치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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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실장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즐겨 쓰던 붓글씨는 ‘경청’이었다. 아들인 이건희 회장에게도 가끔 선물했다고 한다. 기업을 취재하던 시절, 관련 기사를 썼더니 다음 날 삼성 홍보실에서 전화가 왔다. “敬聽(경청)이 아니라 傾聽(경청)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다’와 ‘몸을 기울여 듣다’의 차이다. 둘 다 사전에 나오긴 한다. 듣는 건 마음의 행위라고 생각해 무심코 ‘敬聽’으로 썼는데, 아니었다. 홍보실 직원의 말이 걸작이었다. “몸 기울이지 않으면 듣고 있다는 걸 상대가 어찌 알겠습니까.”

마치 민심 몰랐다는 듯 호들갑
쌍방향 소통 부족했다는 증거
“보여주기 정치는 없다”는 고집
‘침묵의 권력’ 행사한 것 아닌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여권 안팎에서 쇄신 요구가 쏟아진다. 국민의힘은 잠시나마 요란했는데, 용산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내심 충격을 받았을진 몰라도 내색은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였다. ‘변화’보다는 ‘차분’이라는 단어에 더 힘을 실었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태도가 여당에서 김기현 대표 체제 유지와 임명직 당직자 교체라는 어정쩡한 수습책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을 대표하는 태도 중 하나는 “쇼하지 않겠다”다. 수사로 말한다는 검사 출신이라 그런지, 정치인의 과시성 이벤트를 싫어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국내 정치에 남북통일 문제를 이용하는 쇼는 안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TV 생중계하며 “쇼를 연출하거나 이런 거는 절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정치적 고비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 때는 “책임이라는 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한다”는 논리로 ‘정치적 문책’을 거부했다. 검사 출신의 한계라는 지적에도 아랑곳없었다. 취임 1년 즈음 분위기 쇄신을 위한 개각론이 제기됐을 때도 “국면전환용 개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지지율이 갑자기 내려가도 ‘보여주기 정치’는 없다는 메시지를 낼 뿐이다. 비교적 담담한 보선 패배 반응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윤 대통령의 ‘쇼 혐오’는 ‘쇼통’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전임 문재인 정부와는 차별화 포인트다. 탁현민이라는 ‘걸출한’ 연출가를 뒀던 문재인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화려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광화문 호프집에서 시민들과 만나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했고, 임기 중 두 차례 ‘국민과의 대화’를 TV 생중계했다. 그럼에도 문 정부가 ‘불통’ 딱지를 못 뗀 것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했기 때문이다. ‘국민과의 대화’는 우호적인 패널 구성으로 ‘팬미팅’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 와중에 문 대통령은 현실과 동떨어진 ‘부동산 안정론’을 펼쳐 빈축을 샀다.

문제는 이런 쇼마저 아쉽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윤 대통령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회견이었다. 지난해 11월 18일 중단된 출근길 질의응답(도어스테핑)은 재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통의 기본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인데, 국민은 국무회의나 국가 행사에서나 대통령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듣는다. 몸은 청와대를 나왔지만, 마음은 청와대보다 더한 구중심처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말이 권력이듯 침묵도 권력이다. 말하고 싶을 때 입 열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입 다물 수 있는 것이 힘이다. 윤 대통령은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을 국민에게 행사한 셈이다. 용산은 이를 ‘묵묵함’이라고 쓰지만, 국민은 ‘답답함’이라고 읽는다. ‘의연함’이라고 말하지만, ‘오만’이라고 느낀다.

“용산만 쳐다보지 말고 쓴소리도 하라.” 여당의 강서 패배 후 한 신문에 나온 대통령실 관계자의 반응이다. 사실이라면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정말 대통령실이 분위기를 몰랐단 말인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여론조사는 쌓아두기만 하는 건가. 맥줏집에서 옆자리 테이블에 잠깐만 귀 기울이면 쉽게 짐작했을 민심이다. 집단편향에 빠져 듣고 싶은 것만 들었기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반응이 나온다.

“용산이 민심을 못 읽으면 시정을 요구해 관철시키겠다.” 2기 체제를 시작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말했다. 여당으로서 당연한 역할이다. 그러나 장삼이사라도 알 만한 이야기를 집권 정당이 큰마음 먹어야 대통령실에 전달하는 상황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에 종속돼 자율성을 잃은 우리 정당 시스템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땅히 할 말을 대단한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조직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나. 팬덤 정치에 오염된 우리 정치가 어느새 이런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여나 야나 마찬가지다.

쓴소리는 하는 쪽의 용기가 우선이겠지만, 듣는 쪽의 용기가 더 필요하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반응해야 한다. 쇼라도 해야 한다. 몸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은 국민을 상대로 ‘침묵할 수 있는 권력’을 포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