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거 패배보다 더 치명적 독은 어물쩍 미봉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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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5일 내내 집안 싸움 여당, 수습책도 낙제 수준

대통령도 달라질 때, 피로감 큰 비서실 쇄신을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4%로 떨어진 여론조사 결과(리얼미터, 10~13일)가 나왔다. 30%대 중후반에서 횡보하던 리얼미터의 대통령 긍정 평가가 35% 밑으로 내려간 건 5개월 만이다. 여당은 더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50%를 넘긴 반면, 국민의힘은 32%에 그쳤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확인된 민심의 쇄신 요구를 임명직 당직자 교체 선에서 어물쩍 넘어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참패는 반년도 안 남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이 던진 최후통첩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참패 이후 5일 내내 집안싸움만 했다. 수습책이라고 내놓은 게 대표·원내대표·사무총장 등 당 3대 요직을 영남 의원들이 독점한 것이다.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친윤계 정책위의장을 사무총장에 앉히려다 여론의 반발이 심상치 않자 접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다수의 평의원 인식도 민심과 동떨어진 건 마찬가지다. 15일 의원총회에서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 의원은 발언자 23명 중 7명에 불과했고, 대통령실에 대해 목소리를 낸 의원은 3명에 그쳤다. “지금 우리는 민주당만큼 후졌다. 다같이 용산에 가 ‘도끼 상소’라도 올려야 한다”는 비주류 허은아 의원의 일침을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한다.

여당이 앞으로도 민심에 역주행하는 미봉책만 고수한다면 내년 4월 총선에선 그야말로 궤멸적 참패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 2년도 못 가 식물정권으로 전락하고, 연금·노동·교육 개혁이 줄줄이 좌초하는 악몽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쇄신의 핵심은 김기현 대표의 거취다. 보선 참패에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만 김 대표는 “총선에서 패배하면 정계 은퇴할 각오로 책임지고 뛰겠다”고만 했다. 김 대표가 정계 은퇴한다고 관심을 가질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용산엔 민감하고, 국민에겐 이렇게 둔감하고, 의원들의 믿음조차 사지 못하는 대표가 누란의 당을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참패는 정권에 실망한 청년과 중도층이 이탈한 결과다. 그들의 마음을 돌리려면 윤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참모진에 당과의 소통 강화를 주문한 건 옳은 방향이지만, 그런 지시가 먹히려면 본인이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피로감이 큰 대통령실과 내각의 인사 쇄신이 절실하다. 이념 대신 능력과 유연성을 겸비하고 직언도 할 수 있는 인물들로 바꿔 “정권이 달라졌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해줘야 한다. 총선 공천은 당에 주도권을 주겠다고 대통령 스스로가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 의원들이 ‘용산발 낙천 공포’에서 벗어나 민심을 가감 없이 당과 대통령실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 독은 패배보다 미봉(彌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