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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야망 드러냈다"…중립 섰던 중국, 돌연 이스라엘 때린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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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돌연 ‘이스라엘 때리기’에 나선 까닭은 뭘까. 이를 놓고 서방 언론은 “중국의 중동에 대한 야망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속속 내놓고 있다. 친팔레스타인 노선으로 아랍 국가들과 더욱 밀착해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는 풀이다. 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배후로 지목받는 이란을 대미국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속셈도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 6월 14일 중국을 방문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오른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민대회당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6월 14일 중국을 방문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오른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민대회당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15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겸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전날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도를 넘었다”고 맹비난했다. 왕 부장은 “중국은 민간인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고 규탄한다”며 “이스라엘의 행위는 이미 자위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같은 중국의 반응은 이번 사태 이후 처음이다.

전쟁 발발 이후 중국은 표면상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이날 왕 부장은 작심한 듯 “중국은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이 민족의 권리를 회복하는 정의로운 일을 계속해서 지지한다”고 대놓고 팔레스타인 편을 들었다. 왕 부장은 같은 날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과 통화에서도 “(독립된 팔레스타인 건국을 통해) 역사적 불공정은 조속히 끝나야 한다”며 같은 논지를 폈다.

"미국 때문에 버릇 나빠졌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일제히 이스라엘 비판에 합세했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해온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 전 편집인은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가자지구 공습을 비판하며 “이스라엘은 미국 때문에 버릇이 나빠졌다”고 쓰는 등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해당 계정의 팔로어 수만 2500만명에 달할 만큼 그의 비평은 대중 영향력이 강하다.

이같은 선동의 반향도 컸다. 당장 “중국 온라인상에서 반유대주의 정서 게시물이 급증하고 있다”(미 프리덤하우스)는 우려가 나온다.

주중국 이스라엘대사관은 지난 8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계정을 통해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가는 중국계 이스라엘인 여성 사진을 게재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사진 웨이보 캡처

주중국 이스라엘대사관은 지난 8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계정을 통해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가는 중국계 이스라엘인 여성 사진을 게재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사진 웨이보 캡처

앞서 중국 주재 이스라엘대사관 측은 하마스가 공격한 지 하루만인 지난 8일 SNS에 중국계 이스라엘 여성이 하마스에 납치되는 영상을 올리고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중국 내 분위기는 이처럼 정반대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대사관 측이 악성 댓글을 걸러내기 위해 SNS 계정을 필터링하는 지경이다.

네타냐후 국빈 방중 초청했지만… 

서방 전문가들은 중국의 태도 변화 흐름을 눈여겨보고 있다. 중국은 이번 사태 직전만 해도 이스라엘과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국빈 방문을 요청해 이달 말 베이징에서의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었다.

2017년 3월 21일 당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7년 3월 21일 당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중국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 태도를 바꿨다. 대중동 전략상 친팔레스타인 노선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지지가 아랍 세계에서 중국의 위상을 높이고 지역 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중국의 속내를 짚었다.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책임자인 윤 선 선임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지원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는 중국과 아랍 국가들을 다시 같은 편에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입장에선 이스라엘을 전면 지원하는 미국의 대중동 헤게모니를 흔들 수 있는 국면이기도 하다. 미국은 중동 전역으로 사태가 확산하지 않도록 웬만한 국가의 해·공군 전체 전력을 압도하는 2개 항공모함 전단을 이스라엘 주변 해역에 급파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그간 미국과 군사협력했지만, 이번 사태로 불만을 품게 된 아랍 국가들에 중국산 무기 판매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마리아 파파게오르기우 엑스터대 국제관계학 강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과 관계는 대미 협상 카드  

하마스의 공격을 지원한 것으로 거론되는 이란과 관계 역시 중국에는 중요하다. 실제로 중국은 전쟁 와중에 이란과 고위급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또 중국 관영 언론은 이란 언론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의 불법적인 '백린탄' 사용을 비판하는 행태를 보였다. 백린탄은 인체에 닿을 경우 뼈와 살이 녹을 정도로 심각한 화상을 입히는 치명적인 무기다.

이에 대해 중국 안보 전문가인 알레산드로 아두이노 킹스칼리지 런던대 부교수는 FT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과 중동 정책에서 협상하기 위해선 이란을 압박할 수 있는 소수의 행위자 중 하나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며 “중국 입장에서 이란은 대미 협상의 중요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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