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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시각각

윤 대통령이 잘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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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대통령께선 그냥 잘하시는 일, 잘하실 수 있는 일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최근 사석에서 만난 어느 경제 관료의 이 말에 크게 맞장구쳤다. 여권이 참패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전에 들은 얘기니, 지금처럼 대통령실과 여당 분위기가 썰렁할 때는 아니었다. 보선 결과가 나온 뒤 윤석열 대통령의 소통 부족과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과 국정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대부분 공감한다. 대통령실 위주의 국정 운영으로 인한 여당과 정부 부처의 존재감 부족, 야당과의 협치 부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아 온 대목이다.

건전재정 원칙 되살린 건 성과
대통령 ‘직진 본능’ 향할 곳은
구조조정·구조개혁·이익집단

윤 대통령은 오랫동안 검사 생활을 했고, 여의도 경험이 없는 정치 신인이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검사 시절 어록처럼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검사의 강직함이 그를 검찰총장으로, 대통령으로 이끌었다. 윤 대통령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직진 본능’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의 직진 본능과 충돌한 윤 검사의 검찰 상사와 그를 검찰총장에 발탁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의 ‘윗선’은 헌법의 가르침대로 국민밖에 없다. 대통령의 직진 본능이 잘 제어되지 않으면 곤혹스러워 할 대상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뿐이다.

대통령이 직진 본능을 좀 다스려서 인재풀을 더 넓게 쓰고, 야당과 협치도 좀 하고, 국민에게 국정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했으면 한다. 하지만 지난 1년 반의 경험으로 볼 때 정치 복원 등의 국정 쇄신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환갑 지난 사람이 달라지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직진 본능이 꼭 필요한 곳을 향하도록 선택과 집중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앞서 인용한 경제 관료는 대통령이 잘할 수 있는 일로 구조조정을 꼽았다. 구조조정은 일시적 자금난에 빠진 우량 기업은 살리면서 경쟁력이 없어 문 닫아야 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다. 억지로 살린 부실 기업은 금융지원을 비롯해 시장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우량 기업의 몫까지 채간다. 지난해 말 외부감사 기업 2만5135개 중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 기업이 전체 기업의 15.5%였다. 망할 기업은 망해야 경제에 건강한 새 살이 돋는다.

윤석열 정부가 경제 분야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건전재정 원칙을 다시 세운 점이다. 이 불황에 왜 재정을 아끼느냐고 야당은 불만이지만 나랏빚이 올해 처음으로 1100조원을 넘어선 만큼 불가피한 선택이다. 당장 성장률 수치 좀 높이자고 재정과 통화를 풀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불황을 감내하는 것도 구조조정이다.

이념보다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라는 지적은 옳다. 민생은 세심하게 살펴야 하지만 포퓰리즘에 뒷문을 열어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포퓰리즘은 민생을 어루만지는 내용으로 포장되곤 한다. 보선 패배로 내년 총선이 급해진 정부와 여당이 민생의 얼굴을 한 포퓰리즘에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건전재정을 향한 대통령의 직진 본능을 믿는다.

대통령의 만기친람형 국정 운영 대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정부가 강조해 온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비롯한 구조개혁도 대통령의 직진 본능이 필요한 분야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구조개혁을 하면 (잠재성장률이) 2%대로 올라가고, 그 선택은 국민과 정치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익집단을 향한 직진 본능도 유지돼야 한다. 소수의 개별적 이익이 커서 이익집단은 기를 쓰고 달려들지만 국민 다수의 개별적 이익은 작아 나서는 이가 적다. 대통령이 국민 전체 이익의 대표자로서 직진 본능을 지켜주기 바란다. 의대 정원 확대가 그런 일이다. 구조개혁과 구조조정에 대통령의 직진 본능이 발휘된다면 대선 유세 때 대통령의 시원한 어퍼컷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다시 늘어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