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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팀장 육아휴직 다녀오자 팀원 강등…승진도 막은 이 회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근로자를 승진에서 누락한 기업에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육아휴직을 이유로 여성을 승진에서 배제한 건 남녀차별에 해당한다는 게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이다.

9일 서울 시내 지하철에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다. 뉴스1

9일 서울 시내 지하철에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다. 뉴스1

“육아휴직자 승진 누락, 성차별”

16일 중노위는 육아휴직 사용 후 복귀한 근로자를 승진에서 자별한 사업주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정당한 승진 기회를 부여하고, 승진 대상으로 평가되면 차별 기간의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와 함께 차별적 내용의 취업 규칙을 시정하라고 했다. 지난해 5월 남녀고용평등법에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를 도입한 이후 첫 시정명령 판정이다.

여성인 A씨는 육아휴직 전에는 과학‧기술서비스업체의 파트장(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낳을 시점이 다가오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한다. A씨가 출산휴가를 가기 전 회사는 팀장이 자리를 장기간 비우는 점과 부서 업무량 감소 등을 이유로 그의 부서를 다른 부서와 통폐합했다. 파트장 직위는 해제됐다.

승진 점수 됐는데도 연달아 탈락

2020년 A씨는 1년의 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는데 그에게 주어진 자리는 휴직 전과 달랐다.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됐고, 부서와 업무까지 변경됐다. A씨에겐 육아휴직 전에 하지 않은 새로운 업무가 부여됐다. 그는 다시 팀장으로 승진하려 했으나 “승진하기 적합하지 않다”는 부서장 평가가 내려졌다.

A씨는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했는데 지방노동위원회는 성차별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육아휴직을 남성과 여성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이 회사 육아휴직 사용 남녀의 승진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비슷(남성 6.3년, 여성 6.2년)한 만큼 성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그러나 중노위의 판단은 달랐다. 이 회사의 남성 근로자는 650명, 여성은 259명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2.5배 많다. 반면 최근 5년간 육아휴직자를 보면 남성 20명, 여성 54명으로 정반대다. 여성이 남성보다 2.7배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승진까지 평균 6년 이상이 걸렸는데 비육아휴직자는 4.3년이면 승진했다.

이 때문에 중노위는 육아휴직자에 대한 차별이 실질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비육아휴직자에 대한 빠른 승진은 대부분 남성에게 적용되는 만큼 성차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육아휴직자끼리 비교하면 평등했지만, 회사 구성원 전체로 보면 여성에게 차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아닌 성차별 적용 처음

중노위 조사결과 이 업체는 '육아휴직자는 휴직 기간만큼 기본급 인상률을 조정할 수 있다'는 취업규칙을 정하고, 육아휴직자는 승진에서 제외하는 차별 규정을 운영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규정 등으로 인해 A씨는 복직 이후 근무하면서 승진 점수를 채우고도 세 차례나 승진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판정은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심판이 아닌 성차별 시정제도에 따라 이뤄졌다. 통상의 심판 사건은 개별 피해자 구제에 한정되는데 이번엔 성차별 시정이 적용되면서 취업 규칙 변경 등 제도 개선까지 부과됐다. 박정현 중노위 심판1과장은 “육아휴직이 근로자 배치나 승진에 있어 남녀를 차별하는 이유가 돼선 안 된다는 의의가 있다”며 “이 업체는 승진에 있어 육아휴직을 감봉 등 징계와 동일한 결격사유로 취급하는 규정을 운영해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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