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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 지상전에 수만명 투입"…가자지구에 대피 통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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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군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국경선을 따라 어느 비공개 지역에 속속 집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군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국경선을 따라 어느 비공개 지역에 속속 집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전에 수만 명의 병력을 투입할 태세다. 2006년 레바논 전쟁 이후 최대 규모다. 미국도 이스라엘 주변에 또 다른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며 두 개의 항모전단을 가동하는 초유의 군사적 행보를 보이며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번 지상전에 수만 명의 병력을 투입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지도부를 섬멸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규모 군 병력을 동원해 최상의 조건에서 작전을 성공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15일 오후 1시(한국시간 오후 7시)까지 대피하라고 통보했다. IDF는 이날 X(옛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앞서 가자시티와 가자지구 북부 주민에게 안전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라고 촉구했다"며 "이스라엘군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대피 경로에서 어떠한 작전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시간 동안 가자지구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할 기회를 잡기 바란다"며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의 안전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DF는 또 "우리의 지시에 따라 남쪽으로 향하라. 하마스는 이미 그들과 가족들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일제히 "지상 작전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풀이했다. 앞서 IDF는 전날 성명을 통해 "중요한 지상 작전에 중점을 두고, 전국에 병력을 배치해 전쟁의 '다음 단계' 대응 태세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육·해·공을 통해 가자지구에 통합되고 조율된 공격을 하는 등 광범위한 작전을 실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방탄조끼를 입고 가자지구 외곽 군부대를 방문해 군을 독려했다.

이와 관련 당초 주말인 14~15일께 지상군 투입이 예상됐으나, 기상 악화로 전투기와 드론을 이용한 항공지원 작전에 애로가 발생하면서 미뤄졌다고 NYT는 전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투입할 것으로 예상하는 병력은 17년 전 레바논과 전쟁 이후 최대 규모다. 당시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하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근거지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34일간 벌어진 전쟁에서 레바논인 1000여명, 이스라엘인 150여명이 숨졌다.

이번 작전은 국경 지역에서 벌인 헤즈볼라와의 전쟁과 달리 시가전 형태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도심과 지하 터널에서 하마스와 교전하면서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스라엘 측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좁은 골목에 각종 폭발물을 숨겨놓고, 미로 같은 지하 땅굴 안에 각종 지뢰나 함정을 설치해 놓았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이 15~16일 사이 통합정밀직격탄(JDAM)을 터트리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상전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벙커버스터'로 불리는 JDAM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지하시설물을 관통해 폭발하는 만큼 땅굴 파괴에 효과적이다. 이스라엘 군사 전문가인 야콥 카츠는 "이스라엘군은 가능한 한 터널 안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대신 폭발물을 떨어트려 터널을 먼저 없애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이번 전투의 목표를 '하마스 축출'로 내세운 만큼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마크 슈워츠 미 예비역 중장은 이날 BBC에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이 정도 작전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준비의 정도 때문에 당장 임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전쟁 준비가) 몇 시간까진 아니더라도 며칠 더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9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도시 아슈켈론 근처 들판에 이스라엘 군 탱크와 장갑차가 집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9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도시 아슈켈론 근처 들판에 이스라엘 군 탱크와 장갑차가 집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 '초읽기'에 이란은 강하게 반발했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14일 유엔 중동특사를 통해 "'레드라인'이라는 게 있다. 당장 지상전을 멈추지 않으면 통제불능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헤즈볼라가 마련한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지상전에 나설 경우 이란이 시리아 내 무장 단체나 헤즈볼라의 참전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직·간접적으로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이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제2의 전선'이 열릴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는 가운데, 이란의 군 조직인 이슬람 혁명수비대가 시리아 동부 도시 데이르 에조르에 있던 병력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쪽으로 옮기고 있다는 보도가 15일 나왔다. 다마스쿠스는 이스라엘과 좀 더 가까운 곳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리아 정부 고문과 에조르 내 활동가들의 말을 인용해 "재배치된 병력 중 일부는 미사일 전문가"라고 전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이 다른 중동 지역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미국도 분쟁 조절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동에 급파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5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뒤 "(이번 회담이) 매우 생산적"이라고 짧게 답했다. 이후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장관과 빈살만 왕세자는 민간인 보호와 중동 평화 안정 증진을 위해 공동의 약속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전화 통화에서 "중동 평화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이스라엘 하마스 간 충돌은 걷잡을 수 없게 퍼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6일 이스라엘을 재차 방문한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15일 블링컨 장관의 중동 순방 기착지인 이집트 카이로에서 기자들에게 "블링컨 장관은 내일 이스라엘 지도자들과의 추가 협의를 위해 이스라엘로 돌아간다"고 전했다. 블링컨 장관이 다시 이스라엘을 찾는 것은 그만큼 현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동 평화를 위해 미국이 중국에 힘을 보태 달라 손을 내밀었지만, 중국은 이스라엘을 향해 "자위권을 넘어섰다"며 일갈하고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4일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 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민간인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반대·규탄한다"며 "이스라엘의 행위는 자위(自衛) 범위를 이미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이 민족의 권리를 회복하는 정의로운 일을 계속해서 지지하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두 국가 방안'이라는 정확한 궤도로 돌아가 전면적이고 공정하며 항구적인 해결을 보도록 이끌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고, 민간인에 대한 폭력과 테러 행위를 규탄하는 결의안 초안을 표결에 부칠 것을 요청하는 등 '중재자'를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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