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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이상 같은 나라였다… 전지희 신드롬에 '만주족' 재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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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빈-전지희 조가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북한 차수영-박수경 조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31002/ 항저우=장진영 기자

신유빈-전지희 조가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북한 차수영-박수경 조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31002/ 항저우=장진영 기자

최근 막을 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열광했던 종목 중 하나가 탁구였다. 전지희와 신유빈이 속한 여자 단체전과 여자 복식에서 21년 만에 아시안게임 탁구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중국에서 귀화한 전지희가 한족이나 조선족이 아닌 만주족 출신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그는 만주족이 많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베이징 인근 랑팡(廊坊) 출신이다. 중국에서 청소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성인 대표에 탈락한 후 한국인 지도자의 설득으로 귀화를 선택했다.

전지희는 자신에게 다시 기회를 준 한국에 자주 감사함을 표시해 한국인들의 호감을 샀다. 고구려 음식에서 기원한 너비아니, 맥적구이를 좋아한다고 한다. 물광 피부와 쌍꺼풀 수술을 한 것 아니냐는 중국의 네티즌들의 비아냥에 “하하하” “77만원 들었다” “본인이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다” 등 일일이 답글을 달아 “더 잘되기를 바란다”는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전지희 외에 많은 만주족 유명인들이 존재한다. 유명 작가로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로부터 버클이 달린 허리띠로 구타당한 후 모욕감에 자살한 라오서(老舍·1899~1966)가 만주족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연주한 세계적 피아니스트이고 장모가 한국인인 랑랑(郎朗)도 만주족이다. 한국인에게 관지림으로 잘 알려진 홍콩 배우 관즈린(關之琳)도 만주족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만주족인 배우 우징(吳京)은 중국에서 초대박 흥행을 기록한 영화 〈전랑〉 시리즈로 유명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폭로하고 환자들을 돌보다 코로나에 감염돼 요절한 리원량(李文亮)도 만주족이다.

만주족은 말갈족-여진족의 후신이다. 청나라를 개창한 태조 누르하치 때부터 만주족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뒤이은 태종 홍타이지가 여진족이란 명칭 사용을 금지하면서 만주족으로 굳어졌다. 현재 중국의 만주족 인구는 1068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한족 다음가는 거대 민족이다. 동북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과, 인접한 허베이성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만주족 대부분은 한족에 동화된 상태다. 청나라 지배층이었던 만주족은 청나라가 멸망한 1911년 신해혁명 때부터 박해받았다.

1966~76년 동안 이어진 문화대혁명 땐 구 황실 문화 폐지란 명분으로 벌인 홍위병의 박해를 피하려 대대적으로 한족 성으로 바꾸고 만주 문자가 사라지다시피 했으며 민족까지 한족으로 바꿨다. 반면 위에 언급한 만주족 유명인들은 자신의 만주 성(姓)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최근 미국의 LA타임스는 중국의 만주족들, 특히 상류층을 중심으로 많은 만주인들이 자신의 성씨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만주족 가정이 청나라 황실 성씨 중 하나였던 예헤날라란 성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는 사례도 전했다. 만주어와 만주 문자를 다시 익히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만주족의 만주어 복원 움직임에는 한국이 도움을 주고 있다. 조선 시대에 작성된 고서적들 중에는 당대 만주어 발음을 한글로 명확하게 써놓은 일종의 만주어 사전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국에 있는 만주어 연구소에서 이 문헌들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인과 만주족은 유전적으로 가장 흡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알타이 제어(-諸語) 계통으로 언어적으로 유사하고, 기마민족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1000년 이상 부여, 고구려와 발해라는 같은 나라의 구성원이었다.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 왕실이 만주로 이주한 신라 김 씨 왕족 일부의 후손이며 이것이 금나라라는 국호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도 청나라 때 쓰인 사서에 나와 있다. 조선 초기까지는 만주족의 전신이었던 여진족들 많은 수가 여진족을 이끌던 이성계를 따라 조선에 귀화하는 등 역사적으로 가깝다. 이성계가 여진족이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북한 지역에서도 2000년대 초까지 만주인이 민족 분파 중 하나로 존재했다. 이후 만주족들에 한국 성씨를 부여하면서 공식적으로 완전히 한국인과 동화됐다. 북한에는 청나라 시절 만주족이 명절 때 만두를 먹는 풍습이 남아 명절 때 남한처럼 떡국을 먹지 않고 만둣국을 먹는다.

과거 제국주의 일본은 만선사관(滿鮮史觀)이란 것을 내세웠다. 만주의 역사가 중국이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로 편입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만주를 중국으로부터 떼어내 일본의 땅이 된 한반도의 것으로 만들자는 기획으로, 실제 일제는 만주국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인과 만주족의 인연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매우 깊다. 전지희를 계기로 만주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과 호감도가 커졌다. 만주어 연구의 경우처럼 앞으로 한국인과 만주인 사이에 관광, 취업, 유학, 문화·학술 교류 등이 더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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