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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선수가 자기한테 시집오라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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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항저우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6㎏급 동메달리스트 김수현은 특유의 밝은 표정과 유쾌한 행동으로 대회 내내 경기장과 선수촌에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지난 5일 여자 76㎏급 결선에서 바벨을 들어 올린 뒤 환호하는 김수현. 장진영 기자

항저우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6㎏급 동메달리스트 김수현은 특유의 밝은 표정과 유쾌한 행동으로 대회 내내 경기장과 선수촌에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지난 5일 여자 76㎏급 결선에서 바벨을 들어 올린 뒤 환호하는 김수현. 장진영 기자

“금메달리스트보다 더 큰 관심을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웃음)”

11일 부산 동래구 사직동 부산체육회 역도훈련장에서 만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역도 동메달리스트 김수현(28·부산체육회)은 쑥스러운 듯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수현은 지난 5일 열린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6㎏급에서 합계 243㎏(인상 105㎏·용상 138㎏)을 들어 올려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 인천(4위), 2018 자카르타-팔렘방(4위) 대회에 이어 항저우까지, 세 차례 도전 끝에 일군 감격의 생애 첫 아시안게임 메달이었다. 금메달은 북한 송국향(22·합계 267㎏), 은메달도 북한 정춘희(25·합계 266㎏)가 땄다. 메달을 딴 지 일주일이 됐지만, 김수현은 귀국한 뒤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벨을 들었다. 16일 열리는 전국체육대회(목포)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김수현은 “전국체전은 지난 9월 세계선수권(인상 은메달), 아시안게임에 이어진 주요 대회의 마지막”이라면서 “전국체전 3관왕(인상·용상·합계)을 차지해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겠다. 지금처럼 좋은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게 아까워서라도 대충 못 한다”며 웃었다.

김수현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실력뿐만 아니라 좀처럼 보기 힘든 북한 선수들의 미소를 이끌어낸 ‘유쾌한 성격’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북한 송국향(금)과 정춘희(은)는 무표정한 얼굴로 “중국 선수(랴오구이팡)의 부상이 심하지 않은지 걱정된다. 오늘 생일인데 축하 인사를 전한다”며 부상으로 기권한 중국의 랴오구이팡의 안부를 걱정했다. 그런데 김수현은 “나는 3번째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드디어 메달을 땄다. 기분이 좋아서 중국 선수가 다친 것도 몰랐는데…”라며 뒤늦게 “중국 선수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김수현의 ‘엉뚱한 대답’에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던 송국향·정춘희도 순간적으로 ‘무장해제’됐다. 두 북한 선수는 꾹 참던 웃음을 터뜨렸다. 웃는 모습을 취재진에 들키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만 들썩였다. 아시안게임 기간 내내 이어졌던 남북 선수단 간의 냉랭한 분위기도 이 순간만큼은 사라졌다.

북한 코치도 응원, ‘금심’이라 불러줘

바벨 앞에서 활짝 웃는 김수현. 내년 파리올림픽에서도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송봉근 기자

바벨 앞에서 활짝 웃는 김수현. 내년 파리올림픽에서도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송봉근 기자

김수현은 이어 “림정심 언니를 좋아한다. 정심 언니보다 더 잘하는 선수 2명과 경쟁하게 돼 영광”이라며 “목표를 더 크게 잡고, 이 친구들만큼 잘해서 한 단계 더 올라가고 싶다”고 덕담을 건넸다. 그러자 북한 선수들은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림정심은 북한의 역도 영웅이다. 2012 런던올림픽(여자 69㎏급), 2016 리우올림픽(여자 75㎏급),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여자 75㎏급)을 석권했다.

아시안게임 기자회견 당시 ‘일부러 재밌는 대답을 준비한 것이냐’고 묻자 김수현은 “꿈에 그리던 메달을 딴 터라 멘트를 준비하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중국 선수가 부상으로 기권한 줄도 몰랐다. 걱정한다고 한 얘기인데 그게 빵 터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상대에서 따로 떨어져 사진을 찍고 있는데 북한의 송국향·정춘희 선수가 ‘같이 찍자’고 했다. 내가 ‘그래도 돼’라고 물으니 북한 선수들이 ‘일 없습네다’라며 먼저 손을 내밀어 기분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김수현은 북한 선수 및 코치들과의 뒷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입상 가능성이 커지자) 북한 김춘희 코치님이 ‘기회가 왔다’고 말해준 덕분에 더욱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북한 역도 영웅) 림정심 언니를 좋아하는 걸 알고 북한 코치님은 나를 ‘금심’이라고 부르신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이번 아시안게임에 나온 북한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을 경계하더라. 하지만 그들의 선배 격인 북한 선수들과는 2014년부터 언니·동생으로 부른다. 이번 대회에 나오지 않은 림정심이나 김국향 선수와 국제 대회에서 마주치면 내가 먼저 ‘언니 오랜만이에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언니들도 ‘그래 수현아 잘해, 몸 상태 좋아 보인다’라고 격려해준다. 이번에 북한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정심 언니는 출산을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김수현의 명랑하고 쾌활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한 북한 남자 선수는 ‘수현아 나한테 시집와’라고도 농담한 적도 있다. 그 선수는 지금 북한에서 잘 지낸다고 들었다”고 했다.

선수촌 가왕…가라테 국가대표가 남친

김수현

김수현

김수현은 수준급 노래 실력까지 갖췄다. 선수촌 ‘가왕’ 출신이다. 지난해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가왕 선발전에서 에일리의 ‘보여줄게’를 열창해 여자부 1위를 차지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복면가왕’ ‘너의 목소리가 보여’ 등 예능 프로에 출연해 노래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그는 “음악 예능은 접수했으니 유재석 아저씨와 운동선수 롤모델인 서장훈 아저씨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나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수현은 ‘국가대표 커플’로도 유명하다. 남자 친구는 가라테 국가대표 피재윤(22)이다. 피재윤도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지만, 메달 획득엔 실패했다. 김수현은 “재윤이와는 가라테 국가대표 박희준 오빠 소개로 만나 작년 8월부터 사귀게 됐다. 재윤이는 구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장거리 연애’를 한다. 매일 통화해서 괜찮다”면서 “내가 여섯살 많지만, 남자친구가 워낙 듬직해 의지가 된다. 데이트할 땐 사진 찍고 찜질방 가고 고기도 많이 먹는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비록 항저우에선 동반 입상을 못 했지만, 3년 뒤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꼭 함께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현은 ‘장미란 키즈’다. 그는 중학교 2학년이던 2008년 장미란(39·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베이징올림픽 역도 여자 최중량급에서 인상 140㎏, 용상 186㎏을 들어 당시 세계 신기록인 합계 326㎏으로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역도에 입문했다. 늦게 입문했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해 고2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우상’ 장미란 선배를  만난 건 물론이다.

김수현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장미란 선배님처럼 내년 파리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꿈을 꾼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면서 그는 가수 엄정화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세상 속 힘든 일 모두 지워버려, 슬픔은 잊는 거야 네버 크라이.” 때로는 엄숙하고, 때로는 진지했지만 동시에 무척 쾌활하고 발랄한 21세기형 역도 스타였다.

‘역도 요정’ 김수현은 …

◦ 생년월일: 1995년 3월 6일
◦ 체격: 1m60㎝, 76㎏ ◦ 소속: 부산체육회
◦ 주요 수상: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동, 2023 아시아선수권 금
◦ 특기: 노래(2022 선수촌 가왕선발전 여자 1위)
◦ 남자친구: 가라테 국가대표 피재윤
◦ 별명: 유쾌한 수현씨, 진천 에일리, 역도 빅마마
◦ 롤 모델: 장미란·서장훈
◦ 꿈: 파리올림픽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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