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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훈풍에도 "日 좋다" 한국인 감소…"일본도 움직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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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최근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상승한 반면,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 발표 등을 통해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견인해도 일본의 호응이 뒤따르지 않으면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 인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ㆍ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ㆍ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대통령실.

"관계 나아졌다" 공감대 

12일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싱크탱크인 '겐론(言論) NPO'는 한국인 1008명, 일본인 1000명 등 총 2008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과 이달 중에 걸쳐 실시한 ‘일 국민 상호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양 측은 2013년 이후 매해 양국 국민 간 인식 조사를 대면 면접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인의 경우 "현재 한·일 관계가 좋다"는 응답은 지난해 4.9%에서 올해 12.7%로 두 배 이상 뛰었다. "현재 한·일 관계가 나쁘다"는 응답은 지난해 64.6%에서 42%로 줄었다.

일본인 역시 양국 관계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지난해 13.7%에서 올해 29.0%로 두 배 넘게 늘었다. 부정적 평가는 39.8%에서 21.2%로 줄었다. 양국 국민 모두 관계 개선을 실감하는 셈이다.

日은 "韓 더 좋다"지만… 

반면 서로에 대한 호감도 변화 추이는 엇갈렸다.

일본 응답자의 경우 "한국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답변이 지난해 30.4%에서 올해 37.4%로 올랐고,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40.3%에서 32.8%로 떨어졌다.

반면 한국인 중 '일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지난해 30.6%에서 올해 28.9%로 오히려 소폭 줄었다.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52.8%에서 53.3%로 소폭 늘었다.

이와 관련, 동아시아연구원은 "일본 여론은 양국 정부 간 관계 개선 노력을 지지하는 반면, 한국 여론은 그다지 지지를 보내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日 호응도 필요한 시점" 

상대국 정상에 대한 인식도 비슷한 추세였다. 한국인 중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지난해 21.8%에서 올해 36.1%로 14.3%p 증가했다. 반면 일본인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 평가는 지난해 4.6%에서 올해 4.1%로 소폭 줄었다.

이와 관련, 동아시아연구원은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견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응답자 사이에선 반대의 결과가 나온 데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아무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경우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를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지난 3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하는 등 선제적으로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취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결단'에도 일본 측의 호응은 부족하다는 게 국내의 평가다. 식민지배나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 사과 등 감성적 조치는 물론 제3자 변제에 필요한 기금에 기부한 일본 기업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건배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건배하는 모습. 연합뉴스.

'후쿠시마 오염수' 호감도 영향 미미

지난 8월 24일 일본 정부가 시작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한국인의 경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과 무관하게 방류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39.1%로 가장 많았다. 일본인의 경우 "IAEA의 과학적 검증은 신뢰할 수 있으나 일본 정부는 사회적 불신 해소를 위해 추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응답이 47.2%로 가장 많았다.

다만 연구원 측은 "회귀분석 결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의 경우 한국인의 대 일본 호감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한국인이라고 해서 일본에 대해 더 부정적 인식을 갖는 것으로 조사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한·미·일 협력 "중요" 인식

한국인은 한ㆍ미ㆍ일 협력과 한ㆍ미 동맹 강화 측면에서 한ㆍ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비교적 강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71.6%가 "한ㆍ미 동맹의 발전을 위해 한ㆍ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바꿔말하면 한·일 관계를 한·미 및 한·미·일 협력에 종속된 변수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미국이라는 제3의 요인 없이도 한ㆍ일 관계를 독립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동력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ㆍ미ㆍ일 3각 군사안보협력 강화에 동의하는 비율도 한국인의 60.6%, 일본인의 49.9%에 달했다. 특히 3각 군사안보협력에 대한 일본인의 긍정 응답 비율은 문항 조사를 시작한 2018년 이후 가장 높았다. 연구원은 "그간 군사안보협력의 걸림돌로 작용하던 상대국에 대한 불신이 일본 측에서는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8월 미국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지난 8월 미국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핵무장 여론 감소

한편 핵무장 지지여론은 지난해에 비해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핵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지난해에는 69.6%가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찬성했지만, 올해는 58.5%가 찬성해 11.1%p 감소했다. 지난해 4월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양국의 대북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이 핵무장 여론을 잠재운 가장 큰 변수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달 중앙일보 창간 58주년과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이 공동 기획한 심층 대면 면접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7.6%는 "워싱턴 선언이 북한의 위협에 대한 적절한 대응으로, 한국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다만 연구원 측은 한국의 핵무장 찬반 여론을 회귀분석한 결과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사람은 오히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반대하는 경향을 보였고, 반면 미국의 확장억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도리어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통상적인 동맹 이론에 따르면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미국의 공약을 믿지 못할 경우 한국이 두려움을 느껴 자체 핵 보유를 추진하는 수순이 돼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 이와 정 반대의 성향을 보인 것이다. 비록 지난 1년 새 한국인의 핵무장 여론이 상당 부분 잦아들기는 했지만, 한국인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핵 우산에 대한 신뢰와 별개로 상당 수준의 자체 핵무장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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