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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제2 요소수 터지나…핵심광물 13종, 中 쏠림 심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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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국발 요소수 수급 위기설이 불거진 지난달 13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요소수 제한 판매를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중국발 요소수 수급 위기설이 불거진 지난달 13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요소수 제한 판매를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미국·중국 갈등이 '뉴노멀'이 되면서 둘 사이에 낀 한국의 공급망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정부의 다변화 속도는 국제 정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11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략적 중요성이 큰 핵심광물 33종 중 3대 수입국 안에 중국이 포함된 건 25종이었다(지난해 수입액 기준). 이 가운데 리튬·흑연·텅스텐 등 13종의 대중 수입 비중은 2017년 대비 2022년에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흑연의 대중 수입 비중은 2017년 80%에서 지난해 94%로 확대됐다. 인듐도 같은 시기 49%에서 87%로 대중 의존도가 빠르게 심화했다.

핵심광물뿐 아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입 실적 1만 달러 이상 품목 9308개 중 중국 비중이 1위인 품목이 4030개(43.3%)에 달했다. 특히 대중 의존도가 70% 이상인 품목이 2113개로 전체의 22.7%를 차지했다. 업종별로는 기초 원자재와 배터리 소재가 속해있는 철강·금속, 화학제품 등에서 대중 수입 1위 품목이 40~50%에 달하면서 자원 부문의 대중 의존도가 심각했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산업 중간재 대부분을 중국에서 조달하는 만큼 중국발 공급망 리스크가 여전히 크다"라고 짚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소부장(소재ㆍ부품ㆍ장비) 수입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올 7월 기준 소부장 100대 품목의 중국 수입 비중은 19.6%로 2017년 13.7%보다 5.9%포인트 늘었다. 중국의 상승 폭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컸다. 2019년 수출 제한 조치 등으로 일본 의존도를 대폭 낮추자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셈이다.

정부는 배터리용 광물 등에서 공급망 다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 2월 2030년까지 핵심광물 특정국 수입 의존도를 50%대로 완화하겠다는 내용의 '핵심광물 확보 전략'을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유럽연합(EU)의 CRMA(핵심원자재법)처럼 '중국산'을 견제하는 주요국의 산업 장벽이 높아져서다. 하지만 중국은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33종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저렴한 가격 등 이른바 '가성비'가 좋아 수입선을 쉽게 바꾸기 어렵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중국산 원자재가 제일 싸고,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물류비도 적게 든다. 기업으로선 리스크가 있어도 대중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갈등이 상수가 된 만큼 중국발 공급망 문제는 갈수록 커지지만, 실제 대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광물 다변화까진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등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등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보니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이 걸린 한국은 중국 정부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2021년 하반기 극심한 공급난이 발생했고, 지난달에 다시 위기설이 퍼진 요소가 단적인 예다. 중동·동남아 대체선 확보에도 차량에 쓰는 산업용 요소 90.2%(올해 1~7월)는 여전히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의 수출 중단이 실제로 이뤄지면 국내 운송 등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

또한 중국은 대 서방 압박 차원에서 반도체 제조 등에 쓰이는 갈륨·게르마늄의 수출을 8월부터 통제하고 있다. 전 세계 갈륨 생산량의 94%, 게르마늄 생산량의 83%를 차지하는 등 시장 지배력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로썬 '제재 보복 수단'이란 상징성이 더 크지만, 언제든 수급 불안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러한 위험성은 향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기차 등에 중요한 희토류는 중국 정부가 수출 통제를 검토 중인 상황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수출 제한을 시도할 경우 시장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면 지난해에만 역대 최대인 6억4000만 달러 규모의 희토류 영구자석을 수입한 한국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무역협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대 중국 견제가 강해질수록 핵심광물 수출 통제 등 중국의 경제적 강압 조치도 확대될 수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언제든 '제2의 요소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 내 반도체 투자를 제한하는 미국 반도체법처럼 첨단산업을 둘러싼 미·중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만큼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몰라서다. 글로벌 변수에 취약한 한국은 이미 3고(고금리·고환율·고유가)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공급망까지 흔들리면 경제 성장 반등을 장담할 수 없다.

이종배 의원은 "중국에 대한 핵심광물 의존은 요소수 사태, 사드(THAAD) 보복에서 경험했듯 국가 산업 전체의 취약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면서 "언제든 제2의 요소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위험 완화와 손실 분산 전략을 위해선 수입처 다변화를 빠르게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8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8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중국을 넘어 동남아시아ㆍ중앙아시아 등 ‘알타시아(Altasiaㆍ대안적 아시아 공급망)’로 공급망을 적극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들 국가와의 광물 등 교역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베트남은 국내 수입액이 6번째로 큰 국가이며, 말레이시아(10위), 인도네시아(12위) 등도 상위권이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니켈 매장량 1위, 우즈베키스탄은 텅스텐 매장량 7위 등으로 잠재력도 높은 편이다. 정부도 최근 들어 몽골·우즈벡·인도네시아 등과 핵심광물 협력 MOU(업무협약)나 TIPF(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 등을 맺으면서 공급망 확보에 나서고 있다.

곽성일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동남아·중앙아 공급망 파트너십을 늘려야 한다. 기업들도 이들 국가에 적극 뛰어들어 양자 협력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중 의존도를 줄이려면 미국 주도로 14개국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국가들과 광물 공급망 협력을 키울 수 밖에 없다. 희토류 부문에서 앞서 나가는 일본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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