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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안드로메다에서 온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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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무슨 역이름이 이렇게나 기냐. 무려 아홉 자다. 그런데 수사어가 길면 뭔가 의심스럽다. 이것도 피해의식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가보면 별 역사, 공원 없다. 있는 건 동대문인데 그건 동대문역에 선점되었다. 게다가 이 역의 행정구역은 동대문구가 아닌 중구다. 참고로 동대문은 동대문구에 한 뼘도 안 걸친 채 종로구에 있다. 남는 건 문화다. 그나마 근처에 DDP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문화행사가 벌어지는 곳.

이 건물이 준공되자 여기저기서 평가가 무성했다. 한마디 하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존재감이 너무나 육중했기 때문이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저 거대한 금속성 비정형 물체. 미증유의 건축적 걸작이라는 호평과 안드로메다에서 왔다가 불시착한 미확인 비행물체냐는 혹평 사이에 평가의 스펙트럼이 이루어졌다.

도심 살리려는 문화거점 DDP
자생 목적으로 내부 상가 운영
빈약한 주변 상권과 경쟁 구도
거점의 역할은 유동인구 유입

형태 문제의 비난은 대체로 부당했다. 왜 그런 괴상한 건물을 만들었냐는 건 건축가가 받을 힐난은 아니었다. 중국집 주방장은 짜장면을 만든다. 이미 그런 모양의 건물로 알려진 건축가를 초대하고는 접시 위의 식사가 돈가스가 아니라고 타박하면 곤란하다. 형태가 하도 독특하여 주변 도시맥락과 안 어울린다는 비난도 부당했다. 원래 서울은 뒤죽박죽 도시경관을 갖고 있어서 맞춰야 할 도시맥락은 찾기가 좀 어렵다. 특히 건물 형태의 무정부적 자유분방함에서 바로 여기, 동대문 근처가 예외가 아니다. 뭘 갖다 놔도 안 어울리고 그래서 어울린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등장했다. 이 거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주변 상권이 시름시름 쇠락해간다는 점이었다. 분명 지하철 3개 노선 환승역에 방문 유동인구가 저리 많은데 도대체 어떤 연유일까. 짚어보려면 과거를 들춰봐야 한다. 역이름이 담담하게 동대문운동장이던 시절, 주변을 지탱하고 있던 상권은 체육 상업시설들이었다. 권투글러브, 볼링공, 축구화에 챔피언 트로피를 장만하려면 이 근방 상가를 방문하면 됐다. 모두 동대문운동장의 영향력이니 이렇게 유동인구를 모아주는 시설을 상권의 거점이라고 한다. 상업 부동산개발에서는 영어를 써서 앵커라고 부른다. 이런 앵커의 배치는 상가개발의 기본 조건이다.

지난 시절 복합상가의 최고 앵커 업종은 영화관이었다. 영화관만으로 부족한 대규모 시설에는 수족관, 서점, 전망대 등이 추가됐다. 영화가 입장객 방문 시점에 맞춰 시작되지 않는다. 입장객은 남는 시간에 아이스크림 사 먹으며 배회하다 팝콘 사서 영화 보고 저녁 먹고 귀가했다. 그래서 상권이 유지되었다. 아파트 거실 벽면의 TV 크기가 거대해지기 전까지는.

서울의 코엑스에는 이상하고 거대한 책 공간이 자리 잡았다. 도서관이라 자칭하기는 하나 이곳은 도서관도 카페도 아니다. 정말 안드로메다에서 왔는지 별마당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수익시설이 아니다. 뚜렷한 것은 유동인구를 끌어모으는 앵커라는 점이다. 모나리자가 루브르박물관의 앵커고, 루브르박물관이 파리의 앵커다.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방문객을 모아서 주변에 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상권을 살리는 것이다.

그런데 DDP는 거대시설인 것은 맞는데 거점시설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운영구도다. 이런 거대한 문화시설을 건립까지만 하고 운영에는 예산을 추가 지원하지 않겠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 시설들이 선택하는 방식은 자체 생존이다. 그러려면 방문객들의 소비가 외부로 새지 않도록 내부에 소매점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거점시설이 주변 상가와 경쟁하게 된다. DDP는 내부에 훌륭한 상가를 갖추고 있으니 방문객이 굳이 주변 도시를 배회할 필요가 없다.

DDP에서 중요한 문제는 형태가 아니고 건물이 도시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여기부터는 건축적 해결의 문제다. 이 건물은 도시에 대해 철저히 배타적이다. 건물 외부에는 창도 진열장도 없다. 방문객은 무조건 내부로 입장해서 외부를 잊어야 한다. 양변에 건물들의 진열장이 도열한 도로를 가로라고 부른다. 도시의 길은 가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DDP 주변의 외부공간은 가로도, 공원도 아니다.

미술관, 박물관, 음악당이라는 문화시설이 전국 곳곳에 세워진다. 그런데 건설사업까지만 진행하고 지원을 끊으니 시설 생존을 위해 건물 내부에 식음료 시설 포함한 쇼핑센터를 조성해야 한다. 새 건물의 현대적 상업시설은 투자예산 규모가 다르니 이미 쇠락한 인근 풀뿌리 상권이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원도심 살아나고 세수도 늘어나라고 만들었는데 엉뚱하게 주차수요만 늘어난다. 도시는 여전히, 더욱 쇠락해간다.

고속버스터미널도 고터로 줄여 부르는 세대의 시대다. 그러고 보니 DDP, 이 이름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줄인 것이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이 유장한 지하철역 이름은 시대를 잘못 읽고 있는 듯하다. DDP는 도시를 잘못 읽고 있고.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