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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노벨 과학상과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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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올해도 노벨상 발표 시즌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허무하게 지나갔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는 한국인들이 있어서 흥미를 끌었으나, 올해는 그마저도 없어서 더욱 심심하게 지나간 듯하다. 우리나라가 경제력으로는 세계 10위권이고, 요즘은 K컬처를 통해 문화적으로도 인정받는 국가인데, 어째서 세계 30개국 이상이 배출한 노벨 과학상을 아직도 못 받고 있는지 일반 국민은 궁금해 할 만하다. 사실 노벨상을 시상하는 스웨덴의 학자들도 이 상황을 관심있게 보고 있는 모양이다. 필자의 지인 중 노벨물리학상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스웨덴 물리학자가 있어 사석에서 한국이 못 받는 이유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자기들도 국가 위상에 비추어 한국이 아직 노벨 과학상을 못 받은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마땅한 후보가 아직 없다는 이야기였다.

올해도 이루지 못한 노벨상의 꿈
일천한 기초과학 연구가 주원인
독창적 연구엔 장기적 지원 필수
지원하되 간섭 않는 원칙 지켜야

한국이 과학기술 투자에도 적극적인데, 왜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낸 사람이 없을까.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요인은 우리나라가 기초과학을 지원한 역사가 일천(日淺)하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노벨상은 논문 발표 후 상을 받을 때까지(‘노벨 시차’라고 부른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엄정한 검증을 거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과학기술 투자의 목적이 경제개발에 있었기 때문에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였다. 최근에 와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도 늘렸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많이 늦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적 기초과학 연구소로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여럿 배출한 이화학연구소(RIKEN)는 1917년 설립되었는데,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은 2011년에나 설립되어 한 세기 가까이 뒤졌다.

소위 ‘노벨 시차’는 최근 들어 점점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지금은 거의 30년에 달한다. 즉 지금 노벨상을 받으려면 30여 년 전에 업적을 내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스포츠나 대중문화와 다른 점이다. 축구는 지금 실력이 좋으면 바로 금메달을 딸 수 있고 K팝 같은 대중문화도 좋은 작품을 내면 바로 빌보드 차트에 오른다. 심지어 수학 분야도 검증에 그렇게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아서, 좋은 업적을 내면 몇 년 안에 필즈상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노벨 과학상은 훨씬 오랜 기간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짐작하다시피 30여 년 전 한국의 기초과학 연구 여건은 매우 열악하였기에 당시 노벨상을 받을 만한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힘들었다. 당연히 지금 노벨 과학상 후보가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제는 한국의 기초과학 연구 여건도 많이 개선돼 선진국과 비견되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SCI 발표논문 숫자도 세계 12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피인용 횟수도 세계 평균을 웃돌고 있다. 그러면 이제는 충분히 기다리면 노벨 과학상이 자연히 나온다는 이야기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다. 긴 노벨 시차가 말해주듯이 노벨 과학상을 받으려면 장기적이고 끈기있는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은 매우 단기적이어서, 몇 년 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프로젝트가 없어지기 일쑤다. 과거 선진국을 따라가면서 신속히 산업기술을 확보하려는 입장에서는 이것이 효율적인 정책이었을지 모르나, 이제 남이 생각하지 못한 독창적 기술을 창출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인 정책이다. 하물며 장기적인 기초과학 연구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기초과학 지원에 대한 선진국의 태도가 한국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중력파 검출 실험은 미국 국립연구재단(NSF)의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그런데 NSF가 이 연구과제에 지원을 시작한 것은 1992년이었고, 중력파 검출은 2015년이 되어서야 성공하였다. NSF는 23년 동안이나 결과가 나오지 않는 프로젝트에 꾸준히 연구비를 지원한 것이다. NSF가 지원을 결정할 때 총재였던 월터 마시(Walter Massey) 박사를 후에 필자가 만날 기회가 있어서 어떻게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과제에 과감한 지원을 시작할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NSF는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기관입니다”라고 당연한 듯이 대답하였다. 만일 한국의 연구재단이 그런 결정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부와 국회에 불려가 성과없는 과제에 지원했다고 온갖 비판을 받았을 것이고, 아마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지원도 끊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과학 선진국은 기초과학 연구에 대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고, 이런 정책이 노벨 과학상 수상 업적을 만든다. 과연 한국 정부와 국회가 이런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몇 년이나 걸릴까. 또한 지금 정부는 연구과제 관리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꾸는 진정한 연구·개발(R&D) 혁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