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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무분별한 기업인 국감 소환 자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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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4월 9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3 서울디저트페어' 한 부스에서 판매용 탕후루를 진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9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3 서울디저트페어' 한 부스에서 판매용 탕후루를 진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탕후루 대표 등 기업인 100여 명 소환장

정책 질의보다 망신주기…구태 끊어내야

올해 국회 국정감사가 이번 주 시작했다. 1987년 헌법 개정으로 부활한 국감은 입법부가 행정부의 국정 운영 전반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런데 행정부의 국정 운영과 직접 관련이 없는 민간 기업인까지 국감 증인으로 무더기 소환하는 구태가 올해도 되풀이되고 있다.

오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 국감에선 탕후루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김소향 달콤나라앨리스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의료계에선 과일에 설탕 시럽을 입힌 간식거리인 탕후루가 청소년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청소년 비만이나 당뇨의 원인이 되거나 충치 발생 등으로 치아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가 청소년 건강에 대한 위해 요인을 점검하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국회가 국정을 감시하는 것과 합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인을 소환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사실 과도한 섭취가 건강에 좋지 않은 건 탕후루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식품 업체나 프랜차이즈 가운데 유독 탕후루 대표가 국회에 불려 나올 만큼 중대한 잘못이나 위법을 저질렀다고 보기도 어렵다. 청소년 건강에 대한 폭넓은 의견이 필요하다면 의료계나 청소년 관련 전문가에게 묻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 나오는 기업인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20년 63명이었던 게 지난해에는 144명으로 늘었다. 아직 국감 증인을 확정하지 않은 국회 상임위원회까지 고려하면 올해 기업인 증인 숫자는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정책 자문이나 현안 대응 등에 꼭 필요한 이유로 소환하는 기업인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국감 증인 채택은 각 상임위에서 교섭단체 간사 협의를 거쳐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일단 센 사람을 불러놓고 보자”는 식의 무분별한 증인 채택이 여전하다. 지난해 10월 국감에 출석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총책임자(GIO)는 9시간 넘게 자리를 지켰지만 발언 시간은 3분 정도에 그쳤다. 여야 의원들이 돌아가며 서비스 장애의 책임을 추궁하면 이 GIO는 “송구하다”는 답변을 반복할 뿐이었다.

국회가 민간 기업인을 억지로 불러 놓고 벌세우기나 망신주기로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건 국감의 원래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다. “일부 국회의원이 기업 총수를 불러 혼내는 건 일종의 ‘완장질’”(이종천 숭실대 경영학 교수)이란 비판을 깊이 새겨야 한다. 국감은 원칙적으로 행정 부처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되 민간 기업인의 증인 소환은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최소화하는 게 타당하다. 여야 정치권이 진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뜻이 있다면 국감 증인 채택을 둘러싼 잘못된 관행부터 끊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