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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화 변성기」로 만족하겠습니다"-문화부 원년장관 이어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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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90년 문화계는 다양성을 위한 모색이라는 낯선 길 위에 있었다. 80년대는 억압적 체제에의 대응은 요구했다. 그래서 문화 각 부문은 저항성이 강했고, 그 만큼 본질적 측면에서 왜소학도 겪었다. 90년대는 민주화와 세계적인 탈 이데올로기로 인해 우리문화에도 자유로운 상상력의 확대라는 새 지평을 예비해 주고 있다. 90년은 그 첫해였다. 외침과 인간자유에의·꿈이 함께 했다. 다양성과 입체화를 위한 첫걸음이 내디뎌진 90년 우리 문화계를 문학·미술·음악·출판·연극·종교등각 분야의 대표적 인물과 함께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편집자주>
90년 문화계를 되돌아 볼 때 「문화인」이어령씨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문학부 원년 초대장관으로 많은 칭찬·격려와 함께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비판을 받으면서 문화정책과 행정을 펴왔기 때문이다.
그는「이어령 문화부」의 지난 1년 평점을 해달라는 주문에 『90년은 문학부발족첫해로 문화정책의 방향과속도·위치를 잡는 해여서 올해의 평점은 하기가 곤란하고 5년이나 10년 후 각종정책의 결실이 보여질 때나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변을 유보했다.
이 장관은 그러나 정치·경제 지향적인 행정부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문학주의시대의 도래를 문화부가 주도해 외치는 등 사회전반에 문화의 소리를 높인 점은 좋은 점수를 얻지 않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이 장관과 문화부 고위관리들이 내놓고 자랑하지는 않지만 내심 자부하고 있는 결실도 몇 가지 있다.
광복이후 국어학계의 숙원이었던 국립 국어연구원을 설립해 국어체계를 통일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점, 도서관 관련업무가 문교부에서 이관돼 많은 예산·인력 및 지방조직을 갖게된 점, 작은 박물관법을 만들어 미술계를 활성화시키는 한편 미술시장의 개방을 앞두고 국내 미술계의 체질강화여건을 만들어 준 점등이 그것이다.
또 이 장관 부임초기 비 예산·작은 문화심기 사업인 29개 사업이 거의 1백% 완성된 것도 문화부의 자랑거리로 꼽힌다.
그러나 이 장관 자신이 내놓고 낙제점수를 매기는 부분도 있다.
예산확보부문이 그것인데 이 장관은 이와 관련, 『예산확보부문 등 극히 현실적인 분야는 당국자들과 부딪쳐 쟁취하려는 두꺼운 심장과 주먹이 필요한데 평생 펜을 무기로 상상력과 열정에 싸여 살아온 학자출신으로 많은 벽을 느꼈다』고 솔직히 자신의 「무능」을 실토하기도 했다.
문화행정을 책임진 장관으로서, 또 문화인으로서 이 장관은 90년 한국의 문화계를 「문화적 변성기」로 규정한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18세쯤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난10년의 우리문화·예술계는 상당부문 이념 지향적이었으나 올해들어 세계추세에 발맞춰 탈 이데올로기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한편 입체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성숙한 어른의 단계로 막 들어서게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분단국가로서의 핸디캡이 작용해 큰 진통을 겪은 것도 사실이었다고 이 장관은 진단했다.
그는 이 같은 진단과 관련, 「통일」이 「종교」가 되는, 이른바 「절대언어」가 문화까지 지배하는 상황은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이 사회의 모든 잘못은 분단에서 비롯되고 행복과 불행, 옳고 그름이 모두 통일에 좌우된다는 이분법이 예술장르에는 마이너스 효과를 빚는다는 지적이다.
이 장관은 또 통일이라는 절대언어가 사회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문화가 견제를 해야하는데 문화 자체가 이 언어의 영향권에서 진통했던90년 문화계를 문화인들이 깊이 반성하고 자기붕괴와 자기해체 과정을 겪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처방도 내렸다.
90년 문학부의 각종 정책과 사업이 이벤트(행사)에 치우쳐 전시행정이었다는 사회의 여론에 대해 그는 예산이 거의 없는 상황(90년도 국가예산의 0·34%)에서 문학부의 존재를 사회에 알리려면 이벤트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의견을 달리한다.
이벤트가 문화정책의 본령은 아니지만 문학부 원년에 자기존재확인과 문화의 소리를 높이는 데는 적절한 방법이었으며 9l년부터는 정책사업에 주력, 문학 각 분야의 기초마련에 힘을 쏟겠다는 얘기다.
그가 구상하고있는 91년도 문화정책은 문화의 지방화 및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으로 요약된다.
뛰어난 상상력과 많은 아이디어를 소유한 이 장관이 91년에 목표하는 문화정책방향은 4천년의 역사를 오늘에 접목시키는 작업으로 풀이된다.
문화정책이 개재할 수 있는 문화·예술부문 중 90년에 가장 심각한 해악이 나타났던 부문은 카셋·비디오테이프·일부서적 등 복사문학부문이었다고 이 장관은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병든 복사 문학부문에는 투약과 건강한 피의 수혈 등 문화조성정책을 91년부터 강력히 추진하되 건강한 문화의 조성업무도 소홀히 하지는 않겠다는 구상이다.
6공화국 출범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공약한 문화입국의지의 구체적 표현으로 출범1년을 맞은 문화부일.
아직 평가가 곤란하다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문화부1년의 평점을 굳이 매겨본다면『전망이 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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