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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중 반도체 통제 예외…성과 거뒀지만 안도는 이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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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미, 삼성·SK 중국공장 장비 반입 무기한 허용

반도체특화단지 등 지원 차질없이 이뤄져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공장에 대해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을 무기한 허용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미 정부가 중국 내 반도체 생산 기업에 첨단 반도체 기술·장비 수출을 금지했을 때 삼성과 SK하이닉스는 1년간 유예 조치를 받았다. 그간 우리 정부는 미 측과 유예기간 연장을 협의해 왔고, 이번에 별도 절차·기한 없는 허용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이 ‘검증된 최종 사용자’로 지정돼 미 상무부의 별도 승인 없이 장비를 반입할 수 있게 된 상황이라 사실상 미국의 수출 통제를 적용받지 않게 됐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 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생산한다. 이번 조치로 우리 반도체 기업의 중국공장 운영과 투자에 대한 큰 불확실성이 걷혔다고 볼 수 있다. 첨단 장비 도입이 막히면 두 회사의 중국 반도체 생산에 상당한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기술·장비 수출 통제와는 별개로 미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을 통한 규제는 여전하다. 미국은 자국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중국공장 생산 능력(웨이퍼 기준) 확장을 첨단 반도체는 5%, 구형 반도체는 10%로 제한했다. 결국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을 계속 돌릴 수 있게 허용한다지만, ‘현상 유지’만 하라는 게 미국의 속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삼성과 SK 모두 중국 내 반도체 사업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 재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7나노급 반도체를 탑재한 중국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시를 계기로 미국이 대중 수출 통제망을 한층 강화해 나가는 것도 국내 업체엔 큰 부담이다.

그러나 치열한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우리 기업들을 힘 빠지게 만드는 진짜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양향자(한국의희망) 의원에 따르면 정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지난 7월 선정한 반도체 특화단지(경기 평택·용인, 경북 구미)의 필수 기반시설(인프라)에 들어갈 국가 예산이 아직 한 푼도 배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에 필요한 예산은 경기도 8조6156억원, 경북 구미 3조3360억원이다. 나머지 첨단산업 특화단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러니 “반도체 경쟁은 국가 총력전”(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정부의 의지가 민간에 와닿지 않는 것이다. 삼성의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은 전력과 용·폐수 등  모든 인프라를 오스틴시에서 구축·운영하고 삼성은 사용료만 낸다. 대만도 정부가 인프라 시설 전체를 기업에 제공한다. 경쟁국은 빛의 속도로 기업을 지원하는데, 우리는 시늉만 하는 꼴이다. 이래서는 국가 명운이 걸린 반도체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