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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로 만들었는데 '기부 명소'…믿음이 낳은 '2억어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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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선암호수공원 한편에 있는 초미니 종교시설인 사찰 안민사 모습. 사진 울산 남구

울산 선암호수공원 한편에 있는 초미니 종교시설인 사찰 안민사 모습. 사진 울산 남구

지난 5일 울산시 남구 선암호수공원. 언덕을 따라 100m쯤 올라가자 등산복을 입은 50대 주부가 한 평(3.3㎡) 남짓한 사찰 '안민사' 앞에서 두손을 모으고 빌고 있었다. 그러더니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사찰 문을 열고 불전함에 돈을 넣었다. 그는 "수학능력고사를 앞둔 자녀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안민사는 높이 1.8m, 너비 1.2~1.4m 크기로 장난감 같은 시설이다. 하지만 울산시불교종단연합회 인증을 받은 정식 사찰이다. 안민사와 10여m 간격을 두고 비슷한 크기의 '호수교회'와 천주교 시설 '성베드로 기도방'이 있다. 이들 시설도 정식 종교시설로 등록됐다.

시줏돈, 헌금 등 2억2513만원 기부

사찰 안민사에서 한 시민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 중앙포토

사찰 안민사에서 한 시민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 중앙포토

국내에서 가장 작은 초미니 '사찰·교회·성당'이 '기부 명소'로 자리 잡았다. 울산 남구는 1~2주에 한 번꼴로 종교시설 안에 설치한 불전함·헌금함 등에서 수거한 성금을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보낸다. 한번 수거할 때마다 이들 불전함 등에는 총 100만원 정도 모인다. 이렇게 10년 이상 기부해 왔다.

울산 남구 초미니 종교시설 담당은 "안민사와 호수교회를 더해 올해 8월(2011년 말부터)까지 2억2513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한 해 평균 안민사 불전함에선 적게는 900만원 많게는 2300만원, 호수교회 헌금함에선 40만원에서 280만원까지 기부금이 나오는데, 이달부터 연말까진 금액이 더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남구 측은 이들 종교시설에서 거둔 시줏돈 등은 계속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쓸 방침이다.

5만원 낸 수험생 손자 둔 할머니

울산 선암호수공원 한편에 있는 초미니 종교시설. 호수교회의 전경. 사진 울산 남구

울산 선암호수공원 한편에 있는 초미니 종교시설. 호수교회의 전경. 사진 울산 남구

 울산 선암호수공원 한편에 있는 초미니 종교시설. 호수교회의 전경. 사진 울산 남구

울산 선암호수공원 한편에 있는 초미니 종교시설. 호수교회의 전경. 사진 울산 남구

이들 초미니 종교시설은 원래 기부 명소가 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단순 '볼거리용'으로 설치했기 때문이다. 울산 남구는 2011년 9월 6억원 정도를 들여 이들 시설을 만들었다. 사찰 내 불당에는 불상·목탁 등을 갖추고, 교회 내부엔 십자가·성경 등을 완비했다. 성당 안에도 마리아상을 비치했다. 처음엔 공원을 거닐던 이용객이 신기하다며 한 번씩 들여다보거나 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기부 위한 불전함이나 헌금함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 종교시설에 적지 않은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라며 시줏돈과 헌금을 내고 가기 시작했다.

초미니 종교시설 기부액. 자료 울산 남구

초미니 종교시설 기부액. 자료 울산 남구

한 수험생 손자를 둔 할머니가 5만원과 편지를 담은 흰색 봉투를 안민사에 두고 간 게 기부의 시발이 됐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이곳에서 공양을 한 뒤 손자가 좋은 성적으로 울산과학고에 입학하게 돼 감사하다'고 편지에 썼다. 불우이웃을 돕겠다며 유치원 아이들이 낸 동전부터 공원을 둘러보다 1000원, 2000원을 놓고 가는 시민이 줄을 이었다. 쌀·떡·과일·사탕·에너지 음료 등 돈 대신 음식을 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 남구는 기부금을 지키기 위해 폐쇄회로(CC)TV 7대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한국 기록원 인증받은 초미니 종교시설

울산 선암호수공원 한편에 있는 초미니 종교시설. 성베드로 기도방의 전경. 사진 울산 남구

울산 선암호수공원 한편에 있는 초미니 종교시설. 성베드로 기도방의 전경. 사진 울산 남구

이들 초미니 종교시설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종교시설'로 한국 기록원에서 인증(2012년)을 받았다. 또 특허청 디자인 특허(2013년)를 취득했다. 이색 사진 촬영지로 인기다. 관람객 수치를 확인하던 한국 기록원 인증 초기엔 주말 2만여명이 구경 올 정도였다고 남구 측은 전했다. 남구 관계자는 "기네스북에도 도전하려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로 알려진 캐나다 ‘리빙사이드채펄’보다 1.3㎡ 넓어 실패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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