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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95) 짚방석 내지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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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짚방석 내지마라
한호(1543∼1605)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 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병와가곡집

도덕성의 힘

짚으로 만든 방석을 내지 말아라. 낙엽에 앉으면 된다. 관솔불을 켜지 말아라. 어제 졌던 밝은 달이 또다시 뜬다. 가을밤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진수성찬이 무슨 소용이리. 얘야, 변변치 않은 술과 나물일지라도 좋으니 없다 말고 내려무나.

옛 선비들이 이상으로 생각했던 생활은 안빈낙도였다. 가난함을 편히 여기고, 도를 즐기는 생활이었다. 여기서 도(道)라함은 학문이나 수양의 세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검소한 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것이 지식인 사회의 도덕성을 지키는 힘이 되었다. 금전(金錢)이 부르는 유혹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고관대작들을 보며 전통사회의 청빈 사상을 생각한다. 고도 산업사회로 치달으며 사라져간 선인의 엄격했던 자기관리가 그립다.

한호(韓濩)는 조선 선조 때의 명필이다. 호는 석봉(石峯)으로 왕희지와 안진경의 필법을 익혀 행서와 초서 등 각 서체에 모두 뛰어났다.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서예의 쌍벽을 이룬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