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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 아니다…'美소수파' 반란, 韓안보·경제 줄줄이 비상

중앙일보

입력

234년 미국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의 해임결의안이 가결된 초유의 사태를 놓고 한국도 ‘강 건너 불 구경’할 상황이 아니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번 사태가 해외 군비 지출 축소와 보호무역 강화를 주장해온 공화당 내 소수 강경파들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자칫 한반도 안보 상황은 물론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각) 미국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뒤 의회를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각) 미국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뒤 의회를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62년만에 ‘국방수권법’ 합의 불발되나

하원의장 공석이 장기화될 경우 내년도 미국의 국방 정책뿐 아니라 예산 규모까지 결정할 국방수권법(NDAA)의 처리가 무산되거나, 소수 극우파의 입장을 대폭 수용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의회는 극심한 대치로 본예산 처리를 못하는 상황에서도 국방예산 집행의 마비 사태를 막기 위해 1961년 NDAA 제도를 도입한 뒤 매년 여야 합의로 처리해왔다. 정치가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 때문이었다.

공화당 출신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한 같은당 소속 맷 가에츠 하원의원. 하원의장 해임건의안은 3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역사 최초로 가결됐다. 연합뉴스

공화당 출신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한 같은당 소속 맷 가에츠 하원의원. 하원의장 해임건의안은 3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역사 최초로 가결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엔 62년만에 국방예산과 관련한 합의 관행마저 깨지는 또다른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여명의 공화당 내 소수 강경파 ‘프리덤 코커스’가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같은 당 출신 하원의장까지 해임하는 등 미국 정치권의 '비타협적 실력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4일 통화에서 “이번 사태로 미국 정치가 과거의 관행을 유지할 동력이 상실됐음이 확인됐고, NDAA의 처리 무산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특히 안보와 관련해선 내년 대선에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며 방위비 분담금 확대를 주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주한미군ㆍ전작권 담은 상원안 지켜질까

만약 NDAA가 처리되지 않은 채 다음달 17일까지인 임시예산안 유효 기간 만료 때까지 본예산 처리에 실패한다면 주한미군의 임금지급은 물론 추가 무기 배치ㆍ보수 등을 위한 예산 집행이 사실상 중단되는 ‘셧다운’이 시행될 수 있다. 북ㆍ러 결집 등 안보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대응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미연합연습을 앞둔 지난 8월 18일 경기도 동두천시의 미군기지에서 견인포와 수송차량 등 주한미군 장비가 대기하고 있다.   한미 군 당국은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 연합연습을 진행했다. 연합뉴스

한미연합연습을 앞둔 지난 8월 18일 경기도 동두천시의 미군기지에서 견인포와 수송차량 등 주한미군 장비가 대기하고 있다. 한미 군 당국은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 연합연습을 진행했다. 연합뉴스

현재 NDAA은 미 하원과 상원을 각각 통과했지만 결론 난 상태가 아니다.

지난 7월 공화당이 과반을 점한 하원은 재정 지출 감축과 보수 색채의 정책 등을 담은 NDAA 수정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보름 뒤 민주당 다수의 상원은 이를 대부분 삭제한 개정안을 따로 의결했다. 여기엔 2만 8500명의 주한미군 규모를 유지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조건을 강화한 조치,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탈퇴 조건을 강화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NDAA 확정을 위해선 상ㆍ하원이 재차 단일안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하원의 실력자로 부상한 프리덤 코커스가 재정 지출이 필요한 주한미군 관련 항목 등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책적 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한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예측 가능성이 보다 낮아진 상태”라며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미 하원 구성의 특성 상 소수 계파의 막강한 영향력이 확인되면서 내년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이들의 주장이 실제 정책에 지속적으로 반영될 여지가 확대됐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韓, 우크라 23억 달러 지원 발표했는데…

매카시 하원의장의 해임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 8명 중엔 앤디 빅스 의원이 포함돼 있는데, 그는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한반도 평화법안’ 발의에 동참했다. 동참 이유는 한반도 평화보다 군비 지출 축소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백악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야당인 공화당 내 소수 우파인 '프리덤 코커스'는 민주당과 합의해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킨 자당 출신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을 발의했고, 결의안은 3일 가결됐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백악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야당인 공화당 내 소수 우파인 '프리덤 코커스'는 민주당과 합의해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킨 자당 출신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을 발의했고, 결의안은 3일 가결됐다. 연합뉴스

프리덤 코커스는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는 공화당의 전체 의견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케빈 매카시 의장이 민주당과 합의해 통과시킨 임시예산안에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제외된 것도 이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에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확보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프리덤 코커스를 비롯한 공화당은 전쟁 장기화에 따른 막대한 예산 지원을 막는 방안을 대선의 재료로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우크라이나에 23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한 상황에서 외교적으로 부담스러운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정치에서 협상과 타협이 사라지고 소수 강경파가 국가와 국제정세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념을 과시하고 이를 실력으로 관철하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데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 ‘충격파’ 가능성

소수파가 주도한 미국 의회발 충격은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당장 ‘소수파의 반란’으로 셧다운 가능성이 재확산된 이날 글로벌 금리의 기준이 되는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4.8%를 돌파하며 2007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달러 가치도 치솟았다. 장중 한 때 엔ㆍ달러 환율은 149.31엔을, 원ㆍ달러 환율은 1362.5원을 각각 기록했다.

4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2465.07)보다 59.38포인트(2.41%) 하락한 2405.69에 장을 닫았다. 코스닥지수는 33.62포인트(4.00%) 내린 807.40에 거래를 종료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49.3원)보다 14.2원 뛴 1363.5원에 마감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4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2465.07)보다 59.38포인트(2.41%) 하락한 2405.69에 장을 닫았다. 코스닥지수는 33.62포인트(4.00%) 내린 807.40에 거래를 종료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49.3원)보다 14.2원 뛴 1363.5원에 마감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특히 공화당이 내세워온 전통적 자유주의가 아닌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프리덤 포커스의 입김이 보다 강화된다면 미ㆍ중 경쟁 구도속 대중 교역 규모를 큰폭으로 축소해온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대외적 최악의 상황은 대중 교역 축소 속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로 한국이 미ㆍ중 시장에서 동시에 입지가 약화되는 것”이라며 “국내적으로도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정부가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해 대출 규모가 확대된 상태에서 총선을 앞두고 미국발 금리 인상 압박이 강화될 경우 금융정책과 관련한 타이밍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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