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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 쏟은 대형차도 식었다…작고 저렴한 전기차 성공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아는 지난 6월 첫선을 보인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9 판매량 하락에 고심하고 있다.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EV9 신차 등록 대수는 665대(6월), 1682대(7월), 551대(8월)로 월 평균 판매량이 100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전 계약 물량이 1만대를 넘어선 것에 비춰보면 초라한 성적이다. 사진 기아

기아는 지난 6월 첫선을 보인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9 판매량 하락에 고심하고 있다.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EV9 신차 등록 대수는 665대(6월), 1682대(7월), 551대(8월)로 월 평균 판매량이 100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전 계약 물량이 1만대를 넘어선 것에 비춰보면 초라한 성적이다. 사진 기아

전기차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통용됐던 ‘소형에서 대형으로, 저가에서 고가로’라는 성공 공식이 힘을 잃고 있다. 대신 테슬라발(發) 가격 인하 경쟁에 글로벌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저가 소형 전기차가 대세로 떠올랐다.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와 함께 다양한 차종이 발표되는 것도 시장 질서 재편을 가속하고 있다.

3일 시장조사기관인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기아가 지난 6월 첫선을 보인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EV9의 8월 등록 대수는 551대에 그쳤다. 6월과 7월도 각각 665대, 1682대였다. 사전 계약 물량이 1만여 대인 것을 고려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전장 5m가 넘는 EV9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만든 첫 대형 전기차이자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신기술을 털어 넣은 야심작이었다. 그런 만큼 소비자 관심이 쏠렸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 판매량은 실망스러울 수준이었다.

반면 기아가 지난달 출시한 경형 전기차 레이 EV는 반응이 뜨겁다. 지난달 말까지 진행된 사전계약 물량은 6000대로 올해 판매 목표 4000대를 초과 달성했다. 가격은 2735만~2955만원이다. 경형 전기차로 분류돼 개별소비세·교육세·취득세가 면제된다. 개인 및 법인 사업자는 부가세도 환급받을 수 있다.

기아가 최근 출시한 전기차 더 기아 레이 EV. 2000만원대 가성비 전기차로 온라인에서 인기 몰이 중이다. 레이 EV는 150kW급 급속 충전기로 40분 충전 시 배터리 용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으며 7kW급 완속 충전기로 충전 시 6시간 만에 배터리 용량 10%에서 10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사진 기아

기아가 최근 출시한 전기차 더 기아 레이 EV. 2000만원대 가성비 전기차로 온라인에서 인기 몰이 중이다. 레이 EV는 150kW급 급속 충전기로 40분 충전 시 배터리 용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으며 7kW급 완속 충전기로 충전 시 6시간 만에 배터리 용량 10%에서 10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사진 기아

美 론칭이 리트머스 시험지 될 듯

EV9의 초반 부진과 레이 EV의 선전은 전기차 시장 변화의 방향성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전기차 시장이 ‘대형→소형으로, 고가→저가로’ 재편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미국은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기아는 다음 달부터 미국에서 EV9을 판매할 예정인데, 판매량에 따라 대형 전기차의 시장 안착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앞서 기아 북미법인은 지난달 말 EV9의 기본형 모델 가격을 5만4900달러(약 7458만원)로 책정해 발표한 바 있다. 국내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마이클 와일드 기아 북미법인 상품기획 디렉터는 지난 7월 열린 EV9 출시 행사에서 “미국 시장에 전기차는 많지만 이 정도의 크기와 성능, 디자인을 갖춘 대형 SUV는 없다”며 “테슬라는 모델Y를 SUV로 부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기차 1위 테슬라는 견제하기도 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자동차 업계에선 대형차 선호도가 뚜렷한 미국 내 EV9 판매량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EV9에 대한 반응이 미 시장에서도 저조할 경우 대형보다는 소형 전기차 판매에 집중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럴 경우 현대차가 내년에 선보일 예정인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7 출시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EV9는) 초반 품질 문제와 리콜 등으로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데다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가성비 중시 현상도 판매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고 풀이했다.

중국산 LFP 배터리, 저가 EV 경쟁 불붙여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도 전기차 가격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LFP는 리튬이온(NCM) 배터리 대비 30~40% 저렴하다. 중국 배터리 선두 주자 CATL과 비야디(BYD)는 LFP 원천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다. BYD는 LFP의 단점으로 꼽히는 낮은 효율을 극복한 차세대 LFP 배터리 ‘블레이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최근 LFP는 NCM을 몰아붙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중 LFP 비중은 6(2020)→17(2021)→27%(2022년)로 매년 증가세다. 지난해 생산한 글로벌 전기차 4대 중 1대가 LFP 배터리를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아는 레이 EV에 중국 CATL이 만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적용해 가격을 낮췄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여기에다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맞물려 저렴한 전기차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도 ‘LFP 배터리 영토 확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코나 EV에 LFP 배터리를 탑재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LFP를 탑재하면 4000만원대인 코나 전기차 가격이 3000만원대로 낮아져 고객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기아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준중현 전기 SUV EV5. 기아는 이달 전기차 전략을 공개하면서 EV5 국내 출시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 기아

기아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준중현 전기 SUV EV5. 기아는 이달 전기차 전략을 공개하면서 EV5 국내 출시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 기아

현대차그룹, 하위 세그먼트 출격 준비

저가 전기차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초 전기차 가격 인하를 촉발한 테슬라는 ‘반값 전기차’를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지난 7월 테슬라 경영진이 인도를 찾아 200만 루피(약 3266만원)짜리 신차 생산을 위한 공장을 짓는 계획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만5000달러(약 3396만원)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선보인 2023 캐스퍼. 현대차는 캐스퍼 전기차를 내년 무렵 출시할 예정이다. 사진 현대차

현대자동차가 선보인 2023 캐스퍼. 현대차는 캐스퍼 전기차를 내년 무렵 출시할 예정이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그룹 등도 내년부터 저가 전기차를 쏟아낼 계획이다. 작고 저렴한 전기차 경쟁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기아는 이달 12일 ‘기아 EV데이’를 열고 준중형 전기 SUV EV5의 국내 출시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 현지에서 판매 중인 EV5의 기본 모델 가격은 15만9800위안(약 2967만원)이다.

이와 별도로 기아는 소형 전기차 EV3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캐스퍼 전기차 모델을 내년에 공개한다. 폭스바겐은 2000만원대 소형 전기 SUV ID.2를 준비하고 있다. 김평모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하위 세그먼트 전기차 출시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략에 있어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판매가 저조하다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략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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