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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비정규직, 그래도 노벨상 받았다…백신 어머니의 집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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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데 기여한 공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68)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 EPA=연합뉴스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데 기여한 공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68)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 EPA=연합뉴스

비주류 분야에서 끈질기게 열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갔던 한 과학자의 인내심이 노벨상을 탄생시켰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데 기여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68)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에 대해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이같이 소개했다. 학계의 회의적인 시각과 정부의 냉대에도 포기하지 않은 그의 집념은 팬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상황에서 뒤늦게 빛을 봤다. WP는 "커리코가 쌓아온 연구는 보통 10년 이상 걸리는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1년도 안 돼 가능하게 했다"고 전했다.

WP 등에 따르면, 1955년 헝가리 동부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커리코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정육점에 딸린 집에서 자랐다. 수도 시설이나 TV, 냉장고가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학창시절 과학 과목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과학자를 꿈꾸며 헝가리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세게드대에 진학했다.

커털린 커리코(오른쪽)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활짝 웃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커털린 커리코(오른쪽)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활짝 웃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커리코는 생물학·생화학을 공부하며 mRNA 분야 연구에 매료됐다. DNA 속 유전정보를 세포 속 기관에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면 수많은 질병을 고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엔 비주류였던 이 분야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고, 연구실 예산이 다 떨어지자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훗날 뉴욕타임스(NYT)에 "자동차를 팔아 받은 돈 900파운드(약 147만원)를 암시장에서 영국 파운드화로 바꿔 두 살 난 딸의 곰 인형 속에 숨겨 필라델피아로 떠났다"고 회고했다. 85년 당시 공산국가였던 헝가리가 자국 화폐 반출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꿈에 부풀어 찾은 미국 땅에서도 커리코는 수십 년 동안 정규직 자리를 찾지 못한 채 학계의 변두리에 머물러야 했다. 템플대를 거쳐 아이비리그인 펜실베이니아 의대에 연구직으로 입성했지만, 동물실험 과정에서 mRNA가 면역계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등 연구 한계에 부딪히자 대학과 정부는 연구 보조금 지원을 끊었다. 95년 교수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던 그에게 펜실베이니아대는 "교수직을 포기하고 하위 연구직으로 연구를 계속 하든지, 학교에서 나가든지 하라"고 종용했다. 그 시기 그는 암 진단을 받았고, 남편은 비자 문제로 헝가리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커리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직책 강등을 감수했고, 함께 일해주겠다는 교수를 찾으며 실험실을 전전했다. 그러면서 매일 오전 6시에 출근해 연구를 이어갔다. 거의 모든 주말에도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AFP에 "당시엔 연구실에 내 책상이 있다는 것, 진전된 실험 결과를 내놔야한다는 것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동 수상자인 드루 와이스먼(왼쪽)과 커털린 커리코는 2008년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복사기 앞에서 우연히 만나 mRNA 백신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파트너가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공동 수상자인 드루 와이스먼(왼쪽)과 커털린 커리코는 2008년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복사기 앞에서 우연히 만나 mRNA 백신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파트너가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드루 와이스먼(64)과의 만남은 98년 한 복사기 앞에서 이뤄졌다. 2007년 펜실베이니아대에 온 와이스먼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등 질병의 백신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우연히 대화를 튼 두 사람은 mRNA를 백신 개발에 이용하는 방법을 함께 연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미 학계에서 저명했던 와이스먼이 연구비 조달을 도왔다. 2005년 두 사람은 mRNA 치료제의 염증 반응을 없애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출원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학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3년 펜실베이니아대는 커리코가 정부 보조금을 따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수 선임을 거부했다. 결국 대학에는 겸임 교수로 남고, 대신 mRNA 백신을 개발 중이던 독일의 신생기업 바이오엔테크의 스카웃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mRNA 방식을 활용한 뇌 허혈성 질환 치료, 유전자 치료 등을 연구했고 2019년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커털린 커리코의 딸 수잔 프랜시아(오른쪽)는 미국을 대표해 올림픽에서 두 차례 금메달을 딴 조정선수다. 로이터=연합뉴스

커털린 커리코의 딸 수잔 프랜시아(오른쪽)는 미국을 대표해 올림픽에서 두 차례 금메달을 딴 조정선수다. 로이터=연합뉴스

커리코가 집념으로 일군 연구 업적은 코로나19 팬데믹 뒤 모더나·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개발의 토대가 됐다. 그는 NYT에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딸에게 '오늘 뉴스를 꼭 보라'고 알렸던 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의 딸 수잔 프랜시아(41)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미국 조정 대표팀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딴 선수이기도 하다.

수상 소식을 접한 커리코는 스웨덴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어머니는 10년 전 노벨상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며 "스스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어쩌면 내 이름이 나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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