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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해진 학부모 문자, 교사는 바디캠 샀다…공교육 멈춤 한 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국 교사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에서 국회를 향해 교권 회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전국 교사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에서 국회를 향해 교권 회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4일, 서이초 사망 교사의 49재에 맞춰 전국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연가·병가를 내고 ‘우회 파업’을 했다. 이른바 '공교육 멈춤의 날'로 불린 교사 파업 이후 한 달, 학교 현장은 얼마나 변했을까. 일부 교사들은 “큰 변화는 아니지만 조금씩 현장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공손해진 학부모 민원, 교장 태도도 바뀐다

교사들은 교권 침해 이슈가 이어지면서 민원의 강도나 횟수가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민원을 하는 학부모들의 어투가 달라졌다. 의례적이라도 ‘죄송하지만’이라며 예의를 갖춰 문자를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 교사는 “반 학생끼리 사소한 다툼이 있었는데 예전 같으면 ‘교사는 뭐했냐’며 학부모가 항의할 일인데, 요즘엔 ‘선생님이 고생 많다’며 넘어가더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 교사는 “이전에는 수업 시간에도 민원 전화를 받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사례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학교장이나 교감 등 관리자에게 교권 보호 역할이 부여된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다.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교장이 징계를 받게 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은 2년 전 극단적 선택을 한 의정부의 초등 교사가 악성 민원을 겪을 당시 학교 측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며 교장, 교감에 대한 징계에 착수했다. 대전시교육청도 민원을 받다가 목숨을 끊은 교사가 요청한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은 교장 등을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2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교원들의 목소리 전달하는 김용서 교사노동조합 위원장.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교원들의 목소리 전달하는 김용서 교사노동조합 위원장. 연합뉴스

경기도의 한 초등 교감은 “수업 방해 학생 분리 업무를 교장, 교감이 맡는 경우가 많다”며 “관리자들도 교사들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교장은 학교의 민원대응팀 구성을 명시한 교육부의 교권보호 종합대책에 대해 “이전에는 민원 처리 업무를 자발적으로 했는데, 앞으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못 박은 것”이라며 “학교장의 소통과 조율 역할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한 교원단체 관계자는 “역으로 밀려드는 교사의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요청으로 고민에 빠진 교장, 교감도 많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지키려는 교사들도 많아졌다. 서울의 한 초등 교사는 “동료 교원 단체 채팅방에서는 ‘바디캠을 샀다’는 얘기가 많다”며 “나도 학생들에게 주의나 훈계를 줄 때는 무조건 기록으로 남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송을 다수 대리해 온 한 변호사는 “최근에는 학부모가 부당한 요구를 할 때 ‘이건 교권 침해’라고 바로 지적하는 교사도 많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교사 집회는 계속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지난달 14일 오후 가해 학부모가 운영한 음식점 출입문과 유리창에 각종 비난을 담은 쪽지가 가득 붙어 있다. 중앙포토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지난달 14일 오후 가해 학부모가 운영한 음식점 출입문과 유리창에 각종 비난을 담은 쪽지가 가득 붙어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대다수 교사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석 달 간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진 데다, 학부모 갑질 사례들도 연이어 공개되고 있어서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선 “모닝 민원으로 시작했다” “교장을 부검해야” 등의 대화가 오간 학부모 단체 채팅방이 공개되며 논란이 일었다.

최대 초등 교사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에서는 오는 14일과 28일 국회 앞에서 공교육 정상화와 아동학대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집회 개최가 논의되고 있다. 교사의 생활 지도를 아동학대 범죄로부터 면책하는 내용의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의 한 초등 교장은 “지금은 수년간 있어왔던 교권 침해가 특정 사안을 계기로 커진 것 뿐이고 상황은 언제 바뀔지 모른다. 그래서 예산이나 관련 법안 개정이 이번 기회에 꼭 뒷받침돼야 한다는 여론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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