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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카톡 내용도 봤나…연휴 고속도로 뜬 드론 파파라치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올해 설 연휴 기간인 지난 1월 20일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 일대에서 한국도로공사 대전충남본부 교통팀 관계자들이 드론을 이용해 법규 위반차량 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올해 설 연휴 기간인 지난 1월 20일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 일대에서 한국도로공사 대전충남본부 교통팀 관계자들이 드론을 이용해 법규 위반차량 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추석연휴 귀성 행렬이 시작된 지난달 27일. 경부고속도로 죽전휴게소 상공에 드론 두 대가 떠올랐다. 무단으로 버스 전용 차로에 들어서거나 끼어들기 금지 구간을 위반하는 차량 등을 찾기 위해서다. 연휴 첫날인 이날 하루에만 전국 고속도로에서 281대의 교통법규 위반 차량이 드론 감시망에 걸렸다.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는 지난달 27일부터 3일까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나들목(IC)·분기점(JCT) 등 38곳에서 드론 하루 11대를 동원해 교통법규 위반 단속을 벌이고 있다. 이를 두고 “교통법규 집행을 위한 신기술 활용”이라는 입장과 “위치 정보와 사생활에 대한 무분별한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맞부딪히고 있다.

실제 도로공사는 지난달 27일~이달 1일 드론을 이용해 ▶버스전용차로·지정차로 위반 ▶끼어들기 ▶안전띠 미착용 ▶운전중 휴대전화 사용 등 8개 항목 위반사례 1430건을 적발했다. 평균 20m 상공에서 촬영하지만 안전띠 착용이나 운전중 휴대전화 사용 단속이 가능한 건 드론에 장착된 고화질 망원렌즈 때문이다.

올해 초 드론 단속에 걸려 버스전용차로 위반으로 과태료를 냈다는 선모(49) 변호사는 “단 2초 정도 버스전용차로를 침범한 게 걸려서 너무 놀랐다”며 “법을 어긴 건 잘못했지만, 고화질 카메라로 차량 내 모습이 또렷하게 찍히고 그걸 누군가 봤다는 생각에 공포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속 목적으로만 최소한도로 촬영하는지, 불필요한 촬영을 막을 장치가 있는지 등을 알 수 없어 드론 단속 과정에서 사생활 정보가 과도하게 수집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단속권한 없는 도공이 주도…‘3단 하청’ 단속

드론 단속을 교통법규 위반을 단속할 근거가 없는 도로공사가 주도한다는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고속도로상 교통법규 단속 권한은 경찰에게만 있다 보니 도로공사는 드론 촬영으로 ‘교통법규 위반 의심 차량’을 특정해 공익제보 형태로 경찰에 넘기고 있다. 더욱이 도로공사마저도 드론촬영 등 영상 수집 업무를 민간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3단 하청’의 기형적 구조로 법 집행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실종자 수색과 인명 구조에만 드론을 쓸 수 있도록 한 경찰청 훈령(무인비행장치 운용규칙)을 우회하려다 보니 생긴 일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도로공사가 이런 구조로 단속 업무에 드론을 활용해 온 것은 2017년부터다. 도로공사가 민홍철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 7월까지 누적 적발 건수는 총 2만 7528건에 달한다. 2018년 3116건에 불과했던 단속 건수도 지난해엔 6398건으로 약 2배가량 늘어났다. 올해 1월~7월 사이 적발 건수도 3753건으로 2018년 한해 적발 건수보다 많다.

“교통질서 확립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로공사가 경찰에 공익제보를 하는 구조도 문제는 없다”(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입장도 있지만,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현재 드론 단속과 관련한 권한 위임은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 법적 근거가 없는 단속은 무효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귀성 행렬이 시작된 지난 27일 오후 경기 용인시 기흥구 경부고속도로 수원신갈IC 인근 고속도로에서 차량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귀성 행렬이 시작된 지난 27일 오후 경기 용인시 기흥구 경부고속도로 수원신갈IC 인근 고속도로에서 차량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은 훈령 개정을 통해 드론 단속의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추후 도로공사가 아니라 경찰이 직접 단속을 할 수 있도록 이르면 올해 안에 관계법령을 정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일반 시민들이 카메라나 블랙박스 영상 등으로 제보한 교통법규 위반이 300만 건에 달한다”며 “드론 단속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우려가 큰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훈령을 개정해 경찰이 직접 단속에 나서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김대근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생활 침해 등 오·남용 우려가 큰 만큼 드론을 통한 교통법규 위반 단속의 근거는 국회가 정하는 법률에 둘 필요가 있다”며 “예외적인 경우에만 드론이 활용될 수 있도록 사용범위가 제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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