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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배달 척척" 급호감 반전…덴마크도 반한 병원 숨은 일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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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메테 키르케고르 덴마크 고령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26일 국내 병원 중 가장 많은 로봇이 도입된 경기 안양시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을 찾았다. 이미연 커맨드센터장(오른쪽)이 환자에게 동행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을 소개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메테 키르케고르 덴마크 고령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26일 국내 병원 중 가장 많은 로봇이 도입된 경기 안양시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을 찾았다. 이미연 커맨드센터장(오른쪽)이 환자에게 동행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을 소개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Oh yeah, it’s working now! (오, 이제 일을 하는군요!)”
지난달 26일 경기 안양시 한림대 성심병원 11층. 병동 곳곳을 돌아다니는 ‘깔끄미’를 발견한 덴마크의 메테 키르케고르 장관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고령부 장관인 그가 사람처럼 언급한 깔끄미는 바퀴로 이동하는 로봇이다. 바닥 살균, 공기 청정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역 로봇에 이 병원이 깔끄미라는 애칭을 붙였다. 주로 면역력이 약한 암 환자나 호흡기 및 감염 환자 병동에서 ‘근무’한다.

키르케고르 장관이 이 병원을 방문한 것은 이런 방역 로봇 2대를 포함해 총 6종의 로봇 72대가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병원에서 환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해주는 ‘성심이’(안내 로봇), 지하 1층 약제실로부터 다른 층으로 약을 배달해주는 ‘나르미’(배송 로봇), 병상에 있는 환자에게 수술·입원 관련 안내 영상을 보여주는 ‘만능이’(비대면 다학제 로봇) 등이다. 의료진-환자 간 화상통화 기능을 제공하는 홈케어 로봇, 무거운 물품을 운반하는 물류 서비스 로봇도 있다. 한림대 성심병원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로봇 융합모델 실증사업’의 대상 기관으로 지난해 5월 선정된 뒤 다양한 로봇을 순차적으로 도입해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로봇을 보유한 병원이 됐다.

지난달 26일 이미연 한림대성심병원 커맨드센터장(왼쪽 두번째)이 메테 키르케고르 덴마크 고령부 장관에게 병원 1층에서 환자들 길 안내를 돕는 로봇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한림대성심병원

지난달 26일 이미연 한림대성심병원 커맨드센터장(왼쪽 두번째)이 메테 키르케고르 덴마크 고령부 장관에게 병원 1층에서 환자들 길 안내를 돕는 로봇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한림대성심병원

키르케고르 장관은 2박 3일 방한 일정 중 유일한 병원 방문 일정으로 로봇을 활용한 의료현장을 둘러봤다. 그는 병원 투어에 동행한 기자에게 “덴마크의 고령 시민들을 돕기 위해 한국의 복지 분야 첨단기술을 배우고 싶었다”며 “그중에서도 로봇 기술에 특히 관심이 있었는데, 가장 성공적으로 로봇을 도입한 사례로 이 병원이 꼽혀서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덴마크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한국(17.5%)보다 높은 20.5%에 달하는 초고령사회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증가하는 반면, 의료 인력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로봇을 활용하면 의료진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덴마크 고령부의 기대다.

키르케고르 장관은 환자가 안내 로봇에 부착된 화면을 터치해 가고자 하는 원내 과를 입력하면 로봇이 앞장서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를 지켜봤다. 로봇 뒤를 따라가며 “속도 조절은 로봇이 하나, 환자가 하나” “환자가 다른 길로 가려고 하면 어떻게 되나” “로봇들 디자인은 어떻게 한 건가”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상황에 따라 웃음을 짓거나 하트 모양으로 변하기도 하는 로봇의 눈을 보며 “마치 사람처럼 눈이 있어서 환자들이 환영받는 느낌이 들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로봇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 도입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이미연 커맨드센터장은 “많은 한국인이 로봇을 마치 반려동물처럼 여긴다”며 “로봇에 눈이 있도록 디자인하려면 스크린을 별도로 설치해야 해 돈이 더 들지만, 눈이 있어야 환자들이 로봇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감정적인 부분도 신경 쓰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덴마크 고령부 메테 키르케고르 장관이 지난달 26일 국내 병원 중 가장 많은 로봇이 도입된 한림대성심병원을 찾았다. 사진 한림대성심병원

덴마크 고령부 메테 키르케고르 장관이 지난달 26일 국내 병원 중 가장 많은 로봇이 도입된 한림대성심병원을 찾았다. 사진 한림대성심병원

이 센터장의 말처럼 의료 서비스에 로봇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로봇을 잘 작동케 하는 기술 외에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안전성도 더욱 철저히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환자와 의료진이 로봇을 향해 갖는 심리적 거부감도 넘어야 할 산이다.

장관 방한에 맞춰 함께 한국을 찾은 덴마크 주요 병원의 관계자들에게도 이런 부분은 고민거리다. 오르후스(Aarhus) 대학병원의 라스 간츠호른 크누센 최고 분석 책임자(CAO)는 “로봇이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에 도입되는 것을 덴마크인들이 아직 충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며 “로봇이 위험하지 않고, 로봇 덕분에 오히려 사람들 간 소통이 늘어날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성심병원 역시 로봇 도입 초반에는 의료진이 사용을 거부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최근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는 배송 로봇 활용 경험이 있는 의료진의 81%가 ‘계속 사용하겠다’고 답하는 등 긍정적인 반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김영미 커맨드센터 파트장은 “처음엔 ‘필요 없다’며 로봇을 싫어하던 의료진들도 단순반복 업무를 줄여주는 로봇의 효과를 체감하면서 달라졌다”고 했다. 특히 엘리베이터와 연동돼 있어 홀로 층간 이동이 가능한 약 배송 로봇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김 파트장은 “예전엔 간호사 한명이 약을 가지러 한 시간에 4~5번씩 약제실에 내려가야 했다면, 이제 그런 업무 대신 환자 돌봄 등 보다 질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로봇 도입 이후 인력 감축도 없었다고 한다.

덴마크 고령부 메테 키르케고르 장관이 지난달 26일 국내 병원 중 가장 많은 로봇이 도입된 한림대성심병원을 찾았다. 장관과 동행한 고령부 관계자들이 병동에 배치된 로봇을 촬영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덴마크 고령부 메테 키르케고르 장관이 지난달 26일 국내 병원 중 가장 많은 로봇이 도입된 한림대성심병원을 찾았다. 장관과 동행한 고령부 관계자들이 병동에 배치된 로봇을 촬영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1층 안내 로봇에 이어 지하 1층 약제 배송 로봇, 13층 비대면다학제 로봇, 11층 방역 로봇 등 병원 곳곳에 배치된 로봇들을 꼼꼼히 둘러보는 키르케고르 장관에게 이미연 센터장은 “로봇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도록 병원 환경을 바꾸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로봇이 다니는 길목을 사람이 인지할 수 있도록 바닥에 스티커를 부착하고, 로봇이 넘어지지 않도록 문턱을 낮추는 작업 등에 병원을 잘 아는 이들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로봇 회사들은 로봇은 잘 만들지만, 병원이 어떤 환경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이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병원에 맞게 로봇을 수정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투어를 마친 키르케고르 장관은 “로봇을 돌봄 영역에 도입하는 건 더는 찬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작은 시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상용화하기 위해 필요한 작은 단계들이 궁금했는데, 이곳의 독창적인 접근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벌써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만족도가  높다는 게 특히 놀랍다”며 “이런 성공 사례를 보여주면 덴마크에서도 몇 년 안에 의료 서비스 로봇이 널리 도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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