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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한 곳 남은 국내 3대 개시장…"보상 잘 해주면 나가겠다" [르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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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찾은 대구 칠성시장 '개고기 골목'. '개'자가 가려져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26일 찾은 대구 칠성시장 '개고기 골목'. '개'자가 가려져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개 식용 금지법’이요? 당장 개고기를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데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지난달 26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만난 개 식용 음식점 주인이 한 말이다. 칠성시장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개시장이 있다. 속칭 ‘개고기 골목’이다. 이날 점심시간에 맞춰 찾은 이곳엔 여름철이 지나가고 제법 날씨가 선선해져서인지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다만 일부 업소에선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한 개 식용 음식점 주인은 “요즘은 복날이 돼도 찾아오는 손님 중 20~30대 젊은 층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60~80대 단골손님”이라고 했다.

한때 칠성시장 골목 내 50여곳에 달했던 보신탕·건강원은 현재 13곳만 남아있다. 이 골목에서 개고기를 팔았던 몇몇 식당은 간판에서 ‘개’와 ‘보신탕’ 자를 빼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일부는 점포를 임대하려 하고 있다. 가끔 칠성시장을 찾는다는 60대 백모씨는 “예전에는 손님이 정말 많았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다”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개고기를 먹어와서 그런지 개 식용을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 개시장 성업…지금은 곳곳 ‘임대’

26일 찾은 대구 칠성시장 '개고기 골목'엔 점포 임대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대구=백경서 기자

26일 찾은 대구 칠성시장 '개고기 골목'엔 점포 임대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대구=백경서 기자

이곳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복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보신탕을 먹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던 곳이다. 건강원이나 보신탕 업소도 50여 곳에 이르렀다. 하지만 동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찾는 손님이 급격히 줄었다. 개시장 안에 있는 도살장은 2020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폐쇄됐고 개 배설물이 바닥에 떨어지도록 만든 이른바 ‘뜬장(철장)’도 철거됐다.

이런 가운데 ‘개 식용 금지' 관련 법안이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 가능성이 커졌다. 개 식용 금지법안은 9건이 발의돼 있다. 대부분 도살·처리, 식용 사용·판매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칠성개시장은 폐쇄될 전망이다. 이곳은 과거 경기 성남 모란가축시장과 부산 구포가축시장과 함께 ‘국내 3대 개시장’으로 불렸지만, 칠성시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시장은 폐쇄됐다.

상인들 “보상 제대로 이뤄져야”

대구동물보호단체가 초복날인 지난 7월 11일 오전 대구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칠성개시장의 조기 폐쇄를 촉구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대구동물보호단체가 초복날인 지난 7월 11일 오전 대구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칠성개시장의 조기 폐쇄를 촉구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개시장 폐쇄에 대해 상인들은 “대구시에서 보상해주면 나갈 의향이 있다”고 했다. 40년간 이 골목에서 보신탕 가게를 운영했다는 상인은 “대구시에서 얼마 전에 보상 금액을 협의하려고 왔는데 생각이 너무 다른 것 같다. 사실 법안이 통과될지 의문이기도 하고, 수십년간 개고기를 팔아서 생계를 이어왔는데 당장 다른 가게를 차리기엔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건강원을 운영하는 다른 상인은 “동물보호단체가 매년 복날 때마다 폐쇄를 요구하면서 많이 지쳤고, 예전만큼 장사가 잘 안되니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미련은 없다”면서도 “보상만 잘 해주면 나갈 의향은 있다”라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앞서 초복(初伏) 날 대구시에 칠성 개시장 폐쇄를 요구하는 시민 1만명의 서명부를 제출하는 등 폐쇄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임미연 대구생명보호연대 대표는 “상인들은 식당이 폐업하면 생계가 곤란해지기 때문에 대구시가 적극적으로 지원책 등을 논의하고 폐쇄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면 관련 법에 따라 보상을 어떻게 해야할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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