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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표도 없어요" 서울역 발 동동…'민족 대이동'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오후 서울역에서 직원이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동선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오후 서울역에서 직원이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동선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전 10시, 서울역 곳곳이 시끌시끌했다. 일부는 울상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렀고, 일부에선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장 취소표를 찾는 귀성객들이 몰려들면서다. 아내와 함께 대구행 표를 구하러 아침 일찍 서울역을 찾은 허모(67)씨는 간절한 표정으로 역무원과 한참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표를 구입하진 못했다. 허씨는 "기대를 하고 왔는데 예상과 달리 구할 수 있는 표가 전혀 없어서 당황스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장 6일의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이날, 역 안은 이른 귀성길에 오른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미 표를 구한 사람들은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양손에 선물 상자를 든 채 열차와 버스에 올랐지만, 한쪽 편에선 표를 놓친 사람들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휴대전화와 매표소 전광판을 번갈아 살폈다. 이른 아침에 서울역에 나왔지만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까지 고향으로 출발하지 못한 직장인 이유정(26)씨는 “일찍 역에 오면 혹시라도 취소 표를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집을 나선 건데 어림도 없었다. 다행히 연차를 쓸 각오를 하고 연휴 전날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표를 구해 놓긴 해서 그냥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명절마다 티켓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그래도 늦게라도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소고기를 먹을 생각이다. 이번엔 연휴가 길어서 함께 보낼 시간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7일 서울역, 매진을 알리는 매표소 전광판 앞에서 이용객들이 줄을 서 있다. 김민정 기자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7일 서울역, 매진을 알리는 매표소 전광판 앞에서 이용객들이 줄을 서 있다. 김민정 기자

당혹감에 빠진 건 취소 표를 찾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추석 연휴라는 특수한 상황을 미리 알지 못한 채 서울역을 찾은 많은 외국인 승객들은 기차에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매표소 앞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그러나 매표소에서는 “솔드아웃(매진)”, “온리스탠딩(입석)” 이라는 말만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오후가 되자 서울역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승강장으로 연결되는 계단까지 승객이 빼곡했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들이 먼 길을 가는 승객들을 위해 준비한 송편과 휴지는 약 30분 만에 완전히 동이 났다. 승강장 스피커에서는 “계단과 승강장이 혼잡하니 안전에 유의해달라”는 안내방송이 반복됐다.

국토부는 올해 추석 연휴에 총 4022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추석보다 이동 인구가 27% 더 많을 것으로 분석한 것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27일 오후 4시 기준 열차 예매율이 총 83.9%에 달했다. 상행선은 74.6%, 하행선은 93.3%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27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일주일간을 ‘추석 특별 수송 기간’으로 정해 비상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안내 인력도 증원하기로 했다. 또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추석연휴에 철도 총 운행횟수를 224회 늘리고 공급 좌석도 15만 2000석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KTX는 운행을 206회 늘려 11만 9000석을 추가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잠원 IC 부근 하행선이 귀성 차량 증가로 인해 정체를 빚고 있다. 뉴스1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잠원 IC 부근 하행선이 귀성 차량 증가로 인해 정체를 빚고 있다. 뉴스1

하지만 끝내 열차를 예매하지 못해 버스터미널로 발길을 돌리는 귀성객도 적지 않았다.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정세욱(24)씨는 “본가가 창원인데, 원래 열차를 주로 이용하지만 이번엔 신청 기간을 놓치고 예매를 못해서 버스를 선택하게 됐다"며 "취준생 입장이다보니 1년에 한 번 추석 명절이 유일하게 가족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사흘 정도 머물다 올려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버스표 역시 원하는 시간대에 맞춰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식품업계에서 일하는 회사원 설모(29)씨는 "지난달 29일 10시부터 계속 표 예매를 시도했는데 원하는 시간대를 맞추려다 보니 결국 그저께가 돼서야 겨우 표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은 회사에서 조기 퇴근을 하고 바로 터미널로 왔다. 버스 요금도 오르고 여러모로 부담스럽긴 하지만, 집에 오랜만에 내려가는 거라 기대가 된다”고 덧붙였다.

해외여행객 늘며 공항도 북적…“코로나 이전과 근접”

지난 27일 오후 추석 연휴를 맞아 해외 여행을 떠나려는 이용객들로 붐비는 인천국제공항. 김민정 기자

지난 27일 오후 추석 연휴를 맞아 해외 여행을 떠나려는 이용객들로 붐비는 인천국제공항. 김민정 기자

비슷한 시각, 인천국제공항 역시 인파로 가득했다. 고향 방문 대신, 긴 연휴 동안 해외로 가족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공항에서 만난 김석규(65)씨는 조부모를 포함, 총 22명의 가족들이 하와이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Love Family’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도 함께 맞춰 입었다. 김씨는 “경제적 여유가 많은 건 아니지만, 가족들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기회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투자했다”면서 “원래도 가족들 몇몇이 자주 여행을 다니는데, 이번 명절은 특히 연휴도 워낙 길다보니 다 함께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김모(45)씨 부부도 9살·12살 딸들과 함께 태국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김씨는 “가족끼리 해외여행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부모님과는 지난 주말에 식사를 하는 걸로 대신하고 추석 연휴 동안 아이들과 여행을 가게 됐다. 정말 기대된다”며 “명절에 고향 대신 여행을 택한 사람들이 많은지 비행기 표 구하기가 힘들었다. 아이 아빠는 하루 연차를 내고 아이들도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서 연휴 하루 전 출발 표를 예매했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9월 27일부터 10월 3일까지 일주일간 총 121만 3000명, 일평균 기준 17만 3000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연휴와 비교하면 188.9% 증가한 수치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추석 연휴 일 평균 공항 이용객(17만 9462명)과 거의 근접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2023년 9월 27일 오후 4시30분 서해안고속도로 경기 평택시 구간 위를 경찰 헬기가 순찰하고 있다. 경기북부경찰청 항공대 이석주 경감과 김태관·김태훈 경위가 취재에 협조했다. 김민중 기자

2023년 9월 27일 오후 4시30분 서해안고속도로 경기 평택시 구간 위를 경찰 헬기가 순찰하고 있다. 경기북부경찰청 항공대 이석주 경감과 김태관·김태훈 경위가 취재에 협조했다. 김민중 기자

차량 585만대 이동…28일 오전 서울~부산 10시간 10분

한편 한국도로공사는 이날 하루동안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한 차량이 585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수도권에서 타지역으로 이동하는 차량은 53만대, 반대로 타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차량은 47만대 정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속도로 통행량은 이후 꾸준히 증가해 추석 하루 전인 28일 오전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통행량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28일 오전에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서울에서 부산까지 최대 10시간 10분, 광주까지 8시간 55분, 강릉까지는 6시간 50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명절 연휴가 긴 만큼, 하루 평균 이동 인원은 지난해보다 9.4% 감소한 575만명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경찰은 이날부터 10월 3일까지 암행순찰차 43대와 헬기 12대를 동원해 교통사고 다발 구간 30개소 등을 집중 관리한다. 본지 취재진이 이날 오후 4시쯤 경찰 헬기에 탑승해 주요 도로 교통 상황 점검 과정을 살펴본 결과, 서울 남단(서초구 방배동)을 출발해 서해안고속도로→서해대교→서평택→안성JC→동탄IC→신갈IC→양재IC 등의 교통상황을 점검하고 돌아오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헬기 12대에 암행순찰차 등까지 더하면 전국의 주요 도로 상황을 거의 동시에,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연휴 기간 버스전용차로 위반, 갓길운행, 정체교차로 끼어들기 등의 위반행위를 입체적으로 단속해 사고 유발을 예방하고 소통 방해 행위를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3년 9월 27일 오후 4시30분 서해안고속도로 경기 평택시 구간 위를 경찰 헬기가 순찰하고 있다. 경기북부경찰청 항공대 이석주 경감과 김태관·김태훈 경위가 취재에 협조했다. 김민중 기자

2023년 9월 27일 오후 4시30분 서해안고속도로 경기 평택시 구간 위를 경찰 헬기가 순찰하고 있다. 경기북부경찰청 항공대 이석주 경감과 김태관·김태훈 경위가 취재에 협조했다. 김민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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