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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찬의 인프라

“통계 조작은 국민과 경제를 실험 대상 삼은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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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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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통계 조작과 왜곡 실태가 감사원 감사를 통해 알려졌다. 감사원은 관련자에 대한 수사도 의뢰했다. 사실이라면 국기 문란 범죄가 범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충격적인 일이다. 국가 정책은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수립된다. 이 통계를 조작하거나 왜곡했다는 것은 정책을 입맛대로 주물렀다는 얘기이자 국민을 속였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검증 가설인 ‘소득주도성장’
국민 상대로 검증 실험에 나서
실패 거듭하자 잇단 수치 왜곡
통계청장 바꾸는 무리수까지

고용참사 빚은 최저임금 인상

2017년 5월 2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 앞에서 시연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7년 5월 2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 앞에서 시연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다면 문 정부는 왜 이처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범죄를 감행했을까. 그 출발 선상에 문 정부의 국정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은 생산이나 혁신, 즉 성장의 대가다. 선후가 명확하다. 소득주도성장은 이 순서를 뒤집었다. 애초 구현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학계에선 ‘소득주도성장론은 논리적 비약과 불안정성이 존재하고, 그 인과관계가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문 정부가 이 이론을 국정의 뼈대로 내세운 것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국가 경제와 국민을 상대로 실험하는 어처구니없는 국정운영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 첫 실험 대상은 최저임금이었다. 2017년 문 정부가 출범한 뒤 이듬해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16.8%나 확 올렸다. 당장 노동시장이 요동을 쳤다. 음식·숙박업은 물론 제조업 취업자도 뒷걸음질 치는 등 일자리가 큰 충격을 받았다. ‘고용 참사’라는 용어가 일상화했다.

첫 실험의 결과가 실패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꺼내 든 카드는 ‘일자리 안정자금’이었다. 국가가 기업에 고용된 근로자의 임금을 대신 주는,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보지 못한 희한한 정책이다. ‘퍼주기 정책’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럴수록 노동시장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실패를 만회하려 등장하는 무리한 정책에 시장은 더 갈피를 못 잡았기 때문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그 해법으로 택한 것이 고용통계라는 정책 문진표를 왜곡하는 것이었다.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이 오른 뒤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고용은 안 줄었다”고 말했다. 어이없는 논리다. 고용총량은 고용인원(n)에 근로시간(h)을 곱해서 산출한다. 따라서 근로시간이 줄었다는 것은 고용이 줄었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인건비 부담을 느낀 고용주는 우선 근로시간을 줄인다. 단박에 사람을 줄일 수 없으니 인건비 총액을 맞추려는 고육책이다. 고용 감축의 전 단계가 근로시간 감축이라는 얘기다. 장 실장의 논리는 무참하게 깨졌다.

정책 알리바이 찾으려 왜곡 반복

이렇게 되자 문 정부는 또 다른 정책 알리바이를 찾아 나섰다. 2018년 8월 문 전 대통령은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상용직이 늘어났다”는 해석을 붙여서다. 언뜻 듣기에는 정규직과 같은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난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고용의 형태로 구분하는 개념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상용직은 임시직이나 일용직과 구분하는 개념일 뿐 정규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1년 이상 일하면 모두 상용직으로 분류된다. 일한 기간이 3개월이면 임시직, 하루면 일용직이다. 아르바이트를 1년 넘게 해도 상용직이고,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환경미화원, 가사도우미도 상용직이긴 마찬가지다. 이게 고용의 질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얘기인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역대 모든 정부에서 상용직은 증가해왔다. 이걸 교묘하게 정책 실패를 덮기 위한 포장지로 활용한 셈이다. 그나마 문 정부에선 상용직 증가세마저 고꾸라졌다. 2018년에는 그 전해보다 32%나 줄었다.

그러자 청와대는 또 다른 통계를 탐닉했다. 그해 11월 “청년 고용률이 1.1% 올랐다”는 주장을 했다. 이걸 근거로 “고용시장이 나아지는 부분이 있다”고 자화자찬을 했다. 이 말에 당시 통계청 관계자가 허를 찔렀다. “근로시간이 짧은 20대 취업자들이 많이 증가해 발생한 착시현상”이라고. 초단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메뚜기 청춘’의 아픔까지 ‘나아지는 지표’라고 덧칠하는 부도덕성을 보이는 정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흡사 작은 거짓말을 덮으려 더 큰 거짓말을 지어내는 꼴이 반복됐다. 이런 현상은 부동산 통계, 소득분배율 등 정책 전반으로 번졌다. 부동산이나 소득 관련 통계는 아예 조작하기까지 했다. 급기야 조작 지시를 어기고 말을 안 듣는 통계청장을 갈아치웠다. 비정규직이 90만 명을 웃돌 정도로 급증했다는 통계가 나오자 “답변한 근로자가 비정규직으로 착각한 것”이라며 질문에 성실하게 응한 국민을 탓하기까지 했다.

통계 왜곡 바로잡을 기회도 무시

이런 통계 조작과 왜곡을 바로잡을 기회가 문 정부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당시 감사원은 들끓는 여론에 ‘통계 분식’ 의혹을 감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안 했다. 국가 통계에 코드 감사, 감사 해태까지 더해진 셈이다.

국가 통계 조작·왜곡은 선동과 궤를 같이한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의원(국민의힘)은 “선동의 대표적인 행위가 통계를 조작하거나 왜곡해 일반화하고, 세뇌하는 짓”이라며 “국가 경제와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일삼는 데 필연적 요소로 수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호(號)는 그 선동에 감염된 후유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엉망이 된 선동 경제와 국가 정책의 궤도를 회복하는 데 희생되는 것은 결국 국민이어서, 그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