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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더처럼 흔들라고? 이상 기후에도 끄덕없는 와인의 비밀 [쿠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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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서울 명동 마이클 바이 해비치에서 진행한 몰리두커 갈라쇼에 참석한 루크 마르퀴스. 몰리두커 창업가의 아들이다. 사진 CSR

서울 명동 마이클 바이 해비치에서 진행한 몰리두커 갈라쇼에 참석한 루크 마르퀴스. 몰리두커 창업가의 아들이다. 사진 CSR

“Shake! Shake! 흔드세요! 흔드세요! Shake it more! 더 흔드세요!”

뭐라고?! 와인을 흔들라고? 지난 4일 서울 명동 마이클 바이 해비치에서 만난 몰리두커 창업가의 아들 루크 마르퀴스는 와인을 들고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처럼 흔든다. 일반적으로 와인은 흔들지 않는다. 수입 후에도 운송 기간 발생한 흔들림을 고려해 1~2주 가만히 둬, 안정 기간을 갖는다. 고급 와인의 경우에는 최소 한 달을 안정시켜야 맛과 향을 유지할 수 있다. 보관할 때도 세탁기 옆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세탁기의 미세한 진동이 와인의 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가 와인을 흔들고 있다. 그것도 벨벳 글로브(Velvet Glove)를. 벨벳 글로브는 몰리두커 최상위 레벨로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호주의 유일무이한 와인이라는 평가 받았던 그 와인이다.

몰리두커의 발칙한 도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날씨는 빈티지(수확 연도)에 영향을 준다. 같은 포도품종이라도 춥고 비가 많이 내린 해에 만든 와인과 덥고 건조한 해에 만든 와인은 천지 차이다. 와인 애호가들이 빈티지를 따져 구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강수량은 포도의 당도와 산도를 좌우하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열매가 커져 당도와 산도가 낮아지고 반대가 되면 열매가 자라지 않는다. 강수량, 일조량, 토양, 산지 지형 모든 것이 완벽해야 좋은 와인이 만들 수 있다. 와인은 신과 인간의 합작품이다.

몰리두커의 와인들. 체계적인 관리로 17년 동안 생산한 와인 46%가 100대 와인에 들었다. 사진 마이클 바이 해비치

몰리두커의 와인들. 체계적인 관리로 17년 동안 생산한 와인 46%가 100대 와인에 들었다. 사진 마이클 바이 해비치

몰리두커는 신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호주가 가진 자연의 제약을 기술과 사람의 노력으로 채웠다. 포도밭에 물 공급 시설을 갖춰 강수량이 부족하면 물을 준다. 일명 워터링 프로그램(Watering Program)이다. 이렇게 자란 포도나무의 열매는 마르퀴스 프루츠 웨이트(Marquis Fruits Weight)로 관리한다. 과실의 풍미를 수치화해 와인으로 만들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포도품질관리 시스템이다. 테루아, 토양, 산지의 특성 따위는 없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사람의 노력이 가득한 몰리두커 이야기를 루크 마르퀴스와 나눴다.

와인을 흔들다니, 놀라웠다. 

많은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들 때, 이산화황을 넣어 산화를 방지하는데, 몰리두커에서는 이 양을 최소화하고 대신 질소를 넣어 와인의 산화를 방지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이산화황의 냄새가 유쾌하지 않고, 또 드물지만 알레르기가 있거나 두통을 동반한 숙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질소는 병을 거꾸로 세우고 충분히 흔들어 개봉하면 자연스레 빠져나가 맛에 변화가 없다.

이 밖에도 몰리두커만의 특별한 방식이 있나. 

포도밭의 물을 관리하는 워터링 프로그램(Watering Program)이 있다. 주 2회 밭의 상태를 체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물을 공급한다. 또 포도나무의 성장기에 따라 필요한 물을 차등 공급한다. 예를 들면 싹이 나고 넝쿨이 생길 때는 물을 충분히 공급하고 열매가 맺을 때는 수분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포도 품질을 관리하는 마르퀴스 프루츠 웨이트(Marquis Fruits Weight)다. 포도를 맛볼 때, 혀의 어디까지 맛이 전달 되는지를 수치화해 65% 미만의 경우 와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보통 혀끝에서 안쪽 깊은 곳까지 맛이 전달된다면, 좋은 와인이 나온다. 감각과 경험을 데이터로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다.

첫 와인은 언제 생산했나.  

2005년 몰리두커를 창업했다. 하지만 그해 바로 투자를 약속했던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통장에 잔고 17달러를 남아 있는 상태에서 2006년 첫 와인을 만들었다. 자금도 부족하고 유통 판로도 없는 상태에서 부모님은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에게 와인을 보냈고, 그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일어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벨벳 글로브(Velvet Glove)는 로버트 파커로부터 4차례나 97점을 받았고 카니발 오브 러브(Carnival of Love)는 2014년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매년 발표하는 전 세계 100대 와인 중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17년 동안 생산한 와인 중 46%가 100대 와인에 들었다.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생산하기 때문에 빈티지 별 큰 차이가 없어 가능했다.

몰리두커하면 자선 사업을 빼 놓을 수 없는데. 

앞서 말한 대로 은행 잔고 17달러에서 시작한 부모님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몰리두커를 만들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17달러의 기적을 나눠주고 싶었다. 기간을 정해두고 그동안 발생한 수익의 50%를 기부한다. 기부가 홍보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어떤 와인으로 어느 기간 동안 판매되는 수익을 기부하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몰리두커의 블루아이드 보이는 내한한 루크 마르퀴스의 눈을 딴 레벨이다. 명동 마이클 바이 해비치 이승환 셰프는 오리를 주재료로 페어링 했다. 사진 마이클 바이 해비치

몰리두커의 블루아이드 보이는 내한한 루크 마르퀴스의 눈을 딴 레벨이다. 명동 마이클 바이 해비치 이승환 셰프는 오리를 주재료로 페어링 했다. 사진 마이클 바이 해비치

만화 같은 독특한 라벨도 큰 인기다. 

라벨 디자인은 몰리두커의 역사다. 전 세계적으로 탑3 안에 드는 더 복서(The Boxer)의 경우는 처음 시작하는 와이너리의 편견 없이 오직 맛만 보고 유통 계약을 한 미국의 수입사 멀딕 대표를 상징해 만들었다. 더 복서의 연인인 미스몰리(Miss Molly)는 어머니가 춤추는 모습을 담아서 라벨을 만들었다. 더 복서를 기본으로 하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기글팟(Gigglepot)은 깔깔거리는 웃는 주전자라는 뜻인데, 당시 8살이었던 여동생의 별명으로 만든 라벨이다. 왼손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엄마의 어린 시절을 담은 것은 바이올리니스트(Violinist), 더 스쿠터( The Scooter)는 부모님의 연예 시절 스쿠터를 타고 다니셨는데, 그때의 모습을 담았다.

한국도 와인을 만들기엔 척박한 자연환경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와인에 도전한다. 그들에게 조언하자면. 

우리의 행운은 우리가 만든다. 몰리두커의 신념이다. 몰리두커는 과학적 방법으로 호주 와인도 세계적인 와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오고 있다. 만약 우리가  과거 방식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척박하다는 것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기술과 도전적인 생각으로 한국만의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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