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할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형법엔 형의 종류 중 하나로 사형을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자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살인 범죄를 저질러 사형이 확정된 자는 현재 59명이다. 사형은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집행하도록 형사소송법에 규정하고 있다.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 이후 26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국제엠네스티는 2007년부터 대한민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
사형 대신 무기징역 선고 늘어
이후 20년 지나면 가석방 대상

시론

시론

형법에 형 집행 시효기간을 규정하고 있는데, 사형의 경우 시효 30년이 완성되면 형 집행이 면제된다. 지난 5월 기준 최장기 사형수 복역 기간이 29년 4개월이라 오는 11월이면 사형 집행 시효가 완성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최근 법무부는 사형 집행 시효를 폐지했다. 결론적으로 사형은 형벌로 존재하지만, 확정된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으며, 그 집행시효도 폐지돼 사실상 종신형으로 변했다.

그런데 최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흉기 살인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친구를 기다리는 도심지 도로에서, 가족과 함께 쇼핑하는 백화점에서, 일상의 휴식을 찾는 공원에서 흉악 범죄가 자행됐다. 살인 공포가 국민의 일상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법무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한다고 입법예고하자 이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논란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선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먼저 사형을 선고할 흉악 범죄에 사형을 선고하는지 살펴야 한다.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은 과잉 입법일 수 있다. 그러나 흉악 범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고 있지 않다면 무기징역 형의 무게를 달아 봐야 한다. 사형 대신 부과할 무기징역형의 무게가 가볍다면 보완할 입법이 필요하다.

2017년 이후 아무리 흉악한 살인 범죄를 저질러도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된 사건은 없다. 2017년 9월 딸의 친구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이영학 사건’, 2021년 12월 지인을 살해하고 공범까지 살해한 ‘권재찬 사건’, 같은 해 12월 무기징역 확정으로 수감 중에 동료 재소자를 살해한 자에게 각각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상급심은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거나 파기 환송했다.

2019년 5월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든 ‘고유정 사건’, 2019년 8월 모텔 투숙객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장대호 사건’, 2020년 4월 여성 두 명을 살해한 ‘최신종 사건’, 2021년 3월 스토킹 피해자가 자신을 만나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 가족 모두를 살해한 ‘김태현 사건’, 지난해 9월 서울 신당역에서 스토킹 피해자를 살해한 ‘전주환 사건’ 등에선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3명을 살해해도, 2명을 살해해도, 미성년자를 살해해도, 극단적으로 시신을 훼손해도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결론적으로 흉악한 살인 범죄에 대해 법원은 사형 아니라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추세를 보인다.

그런데 현행법에 따르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 40년의 유기징역이 선고된 경우엔 30년 복역 후 가석방이 가능하다. 가석방 기간은 10년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기징역의 가석방 기간이 유기징역보다 짧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불합리 때문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가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최신종 사건’에서, ‘장대호 사건’에서, ‘김태현 사건’에서 법원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사건을 누구보다 깊게 고민한 재판부의 견해를 다른 누가 쉽게 부정할 수 있겠나.

사형 선고는 법관이 판단할 영역이다. 사형 집행은 법무부가 결정할 영역이다. 하지만 현실을 무시한 논의는 유토피아적 이상향에 지나지 않는다. 사형을 선고하지 않고 집행할 수 없는 현실에서 필요한 대안을 찾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은 사형제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재판소에 큰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