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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건보료 7년 만에 동결, 총선 의식했나

중앙일보

입력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 연합뉴스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 연합뉴스

내년도 건강보험료가 동결된다. 2017년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조치와 관련,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건보료 동결은 2009년을 포함해 역대 세 번째다. 이에 따라 내년도 직장가입자 보험료율은 올해처럼 소득의 7.09%를 유지한다. 건강보험료율은 2018년 이후 매년 2~3% 올라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문 케어(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를 시행하느라 보험료를 높게 올렸다. 2019년 3.49%, 2020년 3.2%, 2021년 2.89% 인상했다.

정부는 지난 7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국민 부담과 건보 재정 여건, 사회보험 부담률 등을 고려해 2024년 건강보험료율 인상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부는 26일 "건강보험 재정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라며 "최근 물가·금리 등으로 어려운 국민경제 여건을 고려해 건보료율을 동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 적립금은 지난해 기준으로 23조8701억원이다. 올해 2조원가량 흑자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 복지부가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하지만 건보료 한 해 지출(약 80조~90조원)을 고려하면 26조원의 흑자는 서너 달 치 밖에 안 된다.

이 때문에 정기석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경제가 어렵더라도 건보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년도 건보료를 1%대 만이라도 올려야 한다"고 강조해 왔지만 이번에 반영되지 않았다. 내년 건보료를 동결했기 때문에 2025년에는 상당한 폭으로 올려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도별 건보료 인상률

연도별 건보료 인상률

건보료는 요율을 올릴 때 오르고, 소득이 오를 때 오른다. 그동안 요율 인상률보다 소득 증가율이 높았다. 덕분에 건보료 수입이 적지 않게 증가해왔다. 하지만 내년에는 사정이 다르다. 내년 건보료는 올해 소득에 매긴다. 올해 소득이 그리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소득 증가에 따른 건보료 수입 증가도 기대하기 어렵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학과 교수는 "올해 법인세·개인소득세가 많이 감소한 걸 보면 건보료 수입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올해까지는 코로나19 여파로 의료 이용 기피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내년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70만~80만명의 노인 증가와 맞물려 건보 지출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며 "최소한 물가상승률을 커버할 만큼 건보료를 올려야 하는데, 동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건전 재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듯 사회보험 재정도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적립금이 많은 것 같지만 몇 달 치 밖에 안 돼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도 "지금의 건보 보장률(약 64%)은 충분하지 않다. 이를 확대하려면 일정하게 보험료를 올리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데, 가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동결했다고 하지만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물가인상률이 높으면 선거에 불리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 동결 조치는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며 "사회보험 지속가능성 기반이 허물어지면 선거에 불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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