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먼저 '방한' 꺼낸 시진핑…밀착 북·러에 거리두며 한국 당기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23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6분 동안 만나 시 주석의 방한 문제를 논의하면서, 연내 한ㆍ일ㆍ중 정상회의에 이어 시 주석의 방한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구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특히 북ㆍ러의 '선 넘은' 밀착에 거리를 두려는 중국이 한국과 관계 관리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라는 분석이 나온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 국무총리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 국무총리실.

먼저 방한 꺼낸 시진핑 

정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시 주석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한 총리와 만나 먼저 자신의 방한 문제를 언급하며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 주석은 한ㆍ일ㆍ중 정상회의에 대해서도 "적절한 시기 개최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중국 측 공식 발표엔 시 주석의 방한과 한ㆍ일ㆍ중 정상회의 관련 언급이 직접 등장하진 않았다. 대신 "한ㆍ중이 서로를 존중하며 우호 협력의 큰 방향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중 간의 고위급 만남은 급속도로 잦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 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리창(李强) 중국 총리와 만나 51분 동안 회담한 데 이어, 곧바로 한 총리와 시 주석의 면담이 성사되면서 한 달 내 두 차례 최고위급 소통이 가동됐다. 앞선 지난 7월엔 박진 외교부 장관이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만났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 국무총리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 국무총리실.

양국은 최근까지만 해도 서로 날선 말을 주고 받았다. 지난 4월 윤 대통령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대만 해협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중국 측은 즉각 "말참견 말라"고 반발했고, 정부가 재차 "국격을 의심케 한다"고 항의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두 달 뒤인 지난 6월에도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반드시 후회한다"고 말하며 논란은 극도로 증폭되기도 했다.

中 총리→주석 방한 추진

외교가에선 시 주석이 먼저 방한 문제를 언급한 것과 관련 "연내 혹은 내년 초 한국에서 한ㆍ일ㆍ중 정상회의를 4년만에 재개한 뒤 이를 발판으로 시 주석의 방한을 성사시킨다"는 정부의 계획이 탄력을 받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중국은 한ㆍ일ㆍ중 정상회의처럼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정상급 다자회의에는 주석 대신 주로 총리가 참석하기 때문에 시 주석의 방한이 이뤄질 경우 한ㆍ일ㆍ중 정상회의 이후 별도 일정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1일 언론 인터뷰에서 시 주석의 방한 가능성과 관련해 "기대해도 괜찮다"며 양국 간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오후(현지시간) 중국 항저우 저장성 항저우 시후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비롯한 중국 정부 관계자들과 면담하는 모습. 국무총리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오후(현지시간) 중국 항저우 저장성 항저우 시후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비롯한 중국 정부 관계자들과 면담하는 모습. 국무총리실.

시 주석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 국빈 방한을 끝으로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두 차례 방중했기 때문에, 외교 관례상 이번엔 시 주석이 한국을 답방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다만 중국 일각에선 시 주석은 11년째 3연임을 하고 있고, 윤 대통령은 취임 2년 차라는 이유로 윤 대통령의 방중을 먼저 요구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시 주석의 방한을 위해선 정상회담에 따른 양국의 명확한 실익과 관련한 논의가 먼저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최고위급 소통의 모멘텀을 유지하자는 데에 양국이 뜻을 같이하고, 시 주석 본인도 자신의 방한에 대한 한국의 의지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다만 시 주석 방한을 통해 양국이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을 방문해 대기실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만난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을 방문해 대기실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만난 모습. 대통령실.

북ㆍ러 거리 두기 효과도

일각에선 북ㆍ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수위로 밀착하는 상황이 오히려 한ㆍ중이 서로를 끌어당기도록 자극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미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선 북ㆍ러와 '한통속'으로 묶이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중국은 올해 들어 미국과 소통의 물꼬를 트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가드레일(안전 장치)을 마련하고 있다. 북한과 보다 밀착하며 한국과 갈등을 지속하는 것이 외교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역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 북ㆍ러에 견제구를 던질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연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연 모습. 연합뉴스.

실제 최근 북ㆍ중 관계에서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현재까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폐막식에 고위급 대표단을 전격 파견할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현재까지는 김일국 체육상을 단장으로 한 '올림픽위원회 대표단'만 보낸 상태다. 지난 7월 북한의 소위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 행사 때도 북한은 방북한 러시아 대표단보다 중국 대표단을 사실상 '홀대'하고 중국 또한 대표단의 급을 낮추며 북한과의 밀착에 다소 거리를 두는 모양새를 보였다.

한편 24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 주석의 '9.9절'(북한의 정권 수립일) 축전에 답전을 보내 "연대와 협력을 긴밀히 해나가자"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