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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넓혀야" 이 제안에...보수 86%, 진보 80% 찬성했다 [창간기획-한·미동맹7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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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모든 교전 당사국은 전쟁으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이 시기의 미국 정치인들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안보와 무관하다고 선언했던 멀리 떨어진 나라에 군을 파병함으로써 보여준 비전으로 기억될 자격이 있다.”

최근 한국어로 출간된 저서 『외교』(Diplomacy)에서 미국 현실주의 외교의 거장 헨리 키신저는 ‘한국은 미국의 방어선 밖에 있다’던 미국의 기존 입장을 뒤집은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참전 결정을 “한국 문제에 대해 확고히 맞서기로 한 용기”로 평가했다.

이런 ‘비전’과 ‘용기’를 바탕으로 함께 피흘린 한·미 동맹이 올해로 70년을 맞았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온국민의 땀으로 다시 일군 지금의 대한민국은 침략당한 피해국이 아니라 책임있는 평화 수호국으로 국제무대에 다시 섰고,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생물체와도 같은 동맹은 7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방향으로 진화했다.

창간 58년을 맞은 중앙일보는 동맹의 기반인 한·미 상호 방위조약 체결일(1953년 10월 1일)을 앞두고 국민과 함께 과거 70년을 돌아보고, 미래 70년을 내다보기 위해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8월25일~9월13일 사이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 조사(최대허용 표집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로, 표집은 성별·연령별·지역별 비례할당 후 무작위 추출)를 통해 한·미 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동맹, 세계 지향해야"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6·25 전쟁의 참상에서 태어났다. 태생적으로 북한을 비롯한 공산 진영의 침략 위협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동맹’이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한·미 동맹은 가치를 공유하며, 호혜적 이익을 추구하는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했다.

중앙일보 창간 58주년과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중앙일보가 동아시아연구원(EAI)과 함께 진행한 면접조사에서도 한·미 동맹의 ‘영역’이 장차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을 넘어 지역 및 세계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하는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81.8%로 반대(18.2%)를 크게 앞섰다.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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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성향별로 살펴봐도 응답률에 차이는 있었지만, 찬성이 반대를 크게 앞서는 추세는 같았다. 자신을 진보층으로 규정한 응답자는 찬성 대 반대가 80.2%대 19.8%(60.4%p 차이), 보수층의 경우엔 86.2%대 13.8%(72.4%p 차이)였다.

'포괄적 영역 파트너십' 간주 

이와 관련, 한·미 동맹의 지난 70년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이미 포괄적 영역에서의 파트너십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한·미 동맹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줬다’는 응답자가 87.0%,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을 줬다’는 응답은 86.3%였다. ‘한국의 안보에 도움을 줬다’는 응답(93.8%)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 사진 대통령실.

응답자 대다수가 동맹이 경제,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을 줬다고 답한 것은 동맹의 영역을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전통적인 안보 측면으로만 한정해서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양자 동맹인 한·미 동맹이 지역동맹, 세계동맹을 지향해야 한다는 압도적 지지와도 연결되는 인식으로 보인다.

‘군사적 관여’엔 신중

하지만 구체적 현안 별로는 경계하는 시각도 드러냈다.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생겨 미국이 개입하는 경우 한국이 동참하는 데 대한 의견을 묻자 반대가 56.5%로 찬성(43.5%)보다 13%p 높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중국 신장 지역의 위구르족 인권 탄압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공동 노선에 참여하는 데 대해서는 찬성 52.4%, 반대 47.6%로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찬성이 조금 앞섰다.

반면 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 영역에서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는 정책에 동참해야 한다는 응답은 60.0%로, 반대(40.0%)보다 20.0% p나 높았다. 핵 비확산, 기후변화 감염병 등 범지구적 도전에 공동대응하는 것에는 89.6%가 찬성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한·미 동맹의 영역 확장에 대해서는 80% 이상이 찬성하면서, 개별 현안별로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EAI 측은 “대다수의 한국인은 한·미 동맹의 범위 확대를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며 “단, 이런 선택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선 개별적으로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의 양자회담장 로비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난 모습.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의 양자회담장 로비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난 모습. 사진 대통령실

동맹 확장 경계선 어디까지

이는 동맹의 확장을 지지하면서도 수용할 수 있는 영역과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역 사이의 경계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실제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충돌 시 개입 동참은 외교적 지지에서부터 한국군의 관여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가운데 한국의 대응이 어느 정도 수위를 넘으면 오히려 국익에 피해가 올 것을 우려하는 인식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별도로 “한·미 동맹 때문에 한국은 국익과 관계없는 아시아 지역의 분쟁에 휩쓸릴 수 있다”는 응답도 66.5%로 3분의 2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61.4%), 2022년(62.5%)보다 소폭 상승한 수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이는 동맹에 반대한다기보다는 한·미 동맹이 지역 및 세계동맹으로 발전할 경우 우리의 국익과 미국의 국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데 대한 우려가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정부로서는 이처럼 한·미 국익 간 차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어떤 원칙에 따라 정책을 집행할 것인지 국민에 제시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대만해협 문제에는 개입을 꺼리면서도 첨단기술 영역에서의 대중 견제 정책에 동참하거나 위구르족 인권 탄압 문제에 대한 강경 대응에 참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패권적 태도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서는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 동맹이 함께 나서는 것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한·미 위한 한·일’ 지지 

국내에서 반일 정서가 여전하지만, ‘한·미 동맹 발전을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가 71.5%로 “아니다”(28.5%)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한·일 관계를 우선 개선한 뒤 한·미 동맹 강화, 한·미·일 안보 협력 공고화 등의 수순을 택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 방향성 자체에는 공감하는 인식이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통적 안보동맹으로서의 한·미 동맹은 미국이 한국에 방위를 제공하는, 공여와 수혜의 관계였지만 이런 인식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한·미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은 88.9%로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같은 질문을 던졌던 2015년(98.0%)이나 2018년(97.6%)과 비교하면 9%p 내외 떨어졌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여기엔 ‘미국이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인식도 다소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동의한다 33.3%, 동의하지 않는다 66.7%), 한국의 외교적 위상이 높아진 데 따른 상대적 인식 변화로도 해석 가능하다. 한·미 동맹에만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파트너십을 맺은 국가들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응답자들은 한국의 외교에서 한·미 동맹이 여전히 가장 중요하지만, 동맹만 추구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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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미 간 경제관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양국 경제는 상호보완적”이라는 응답자는 50.8%, “양국 경제는 상호경쟁적”이라는 응답은 31.7%였다. 양국 간 경제관계가 상호 경쟁적이라고 본 응답자가 3분의 1 가까이 되는 건 한국의 국력 신장과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의 발전으로 경제 안보 등에서는 미국과 동등한 입장을 향해 가고 있다는 인식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호혜적인 동맹’을 바란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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