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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 문제 팔면서, 수능도 출제…이 교사들 처벌 안될 수도?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러진 평가원 주관 모의평가 시험지. 뉴스1

지난 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러진 평가원 주관 모의평가 시험지. 뉴스1

학원에 문제를 팔면서 수능·모의평가 출제에 참여한 교사 24명이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하지만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로 지목된 교사들에 대한 법적 처벌 여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 나온다. 전례가 없는 데다 교육부가 밝힌 고소·수사 의뢰 대상의 기준이 명확치 않아서다.

일반 수험서는 안 되고 EBS는 된다?

교육부는 지난 19일 학원에 문제를 판매했다고 자진 신고한 현직 교사 322명 중 수능이나 모의평가 출제·검토위원 경력이 있는 24명을 고소·수사의뢰했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의 타깃은 일부 학원들이 원생에게만 독점 제공하는, 소위 ‘봉투 모의고사’ 출제자들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형 학원을 운영하는 입시 업체 또는 학원에 모의고사를 제공하는 업체와 거래한 교사들이라 생각하면 된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일반적인 출판사와 거래한 교사들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교육부가 내세운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수능·모의고사 출제진은 학원 사설 모의고사 출제를 금지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육부가 고소 근거로 내세운 평가원의 출제진 서약서 역시 범위가 다소 광범위하다. 평가원은 지난 2017학년도 모의평가·수능부터 “최근 3년간 상업적 수험서를 집필하거나 영리 목적으로 강의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요구해왔다. 이 조항에 거짓으로 표기한 행위가 수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출제 업무를 방해했다고 본 것이다. 평가원의 출제 배제 기준엔 시중의 수험서 집필 경력자도 포함된다. 단, 공익적 목적으로 출간되는 EBS 교재 집필 경험은 제외한다.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된 EBS 수능 연계 교재. 뉴스1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된 EBS 수능 연계 교재. 뉴스1

한 전직 수학 교사는 “EBS 교재도 학생들이 돈을 주고 사는데, 시중 교재와 다른 점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전국 단위 학력평가를 시행하는 한 교육청 관계자도 “우리 역시 출제 전 서약서에 보안에 대한 내용만 강조했을 뿐, 출제 경험을 포함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EBS 교재 집필 경험이 있는 교사는 “출제를 잘하는 교사들은 대부분 교재에 문제를 낸 적이 있다. 내신 문제만 만들어서는 전문성이 쌓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시중 수험서를 출판하는 업체와 접점이 있는 교사까지 배제하면 출제진 풀이 확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상업용 수험서 집필 경험자도 출제에서 배제하는 것은 어느 출판사의 교재가 적중률이 높다는 편파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만큼 공정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 출판사로 등록돼있더라도 대형 입시업체에 모의고사를 파는 전문 업체인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란법으로 처벌 가능할까…“출제비 비싼 이유 입증해야”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가. 뉴시스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가. 뉴시스

교육부는 수능·모의평가 출제 후 학원에 문항을 판 22명의 교사를 수사의뢰하며 청탁금지법과 비밀 유지 의무(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부 교사는 5년간 5억원가량의 대가를 받아 챙겼다”며 “청탁금지법 8조에는 채무 등 정당한 권원에 의해 제공되는 금품 역시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 300만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또 이런 대가가 수능·모평 출제 경험을 토대로 프리미엄이 책정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수민 변호사는 “경찰이 출제비가 비쌌던 이유를 입증하지 못하면 교사들은 고액의 이유를 자신의 지위가 아닌 출제 전문성, 독창성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치동에서 일했던 전직 강사 역시 “문제가 좋으면 교사가 아니라 명문대생에게도 문항 당 100만원을 주고 사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2016년 유명 학원 강사였던 이모씨가 모의평가 출제진으로부터 문제를 받아 학원생들에게 유출해 징역 10개월의 처분을 받은 일이 있지만, 이는 이번 수사 건과는 차이가 있다. 서울의 한 사범대 교수는 “실제 문제를 유출한 것이 아니라면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가 특정되지 않으므로 이모씨보다는 처벌 수위가 낮아지고, 행정상 징계 또한 근거가 모호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발 방지 또한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출제진에 한해 관련한 계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한 사전에 문제 판매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며 “결국 거짓을 서약했을 시 민·형사상의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강하게 고지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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